‘신구간(新舊間)’ 풍습의 현대적 의미(上)
‘신구간(新舊間)’ 풍습의 현대적 의미(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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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에는 육지부에서 찾아볼 수 없는 ‘신구간(新舊間)’이라는 특이한 세시풍습이 있다. 이른바 대한 후 5일에서 입춘 전 3일, 즉 양력 1월 25~26일에서 2월 1~2일 사이에 이사, 집수리, 변소개축 등을 하는 풍습이다. 제주도의 민간에서는 ‘신구간에 옥황상제의 명을 받아 내려온 신들의 임기가 다 끝나 구관(舊官)과 신관(新官)이 교대되는데, 이 기간에는 구관은 하늘로 올라갔고 신관은 아직 지상에 내려오지 않았기 때문에 신이 두려워서 못했던 일들을 해도 아무런 탈이 없다.’는 속신(俗信)을 믿어왔던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신구간 풍습은 폐단도 적지 않았다. 예를 들어 일시에 많은 가구가 이사를 해야 하기 때문에 주택이 부족하던 시절에는 임대료 폭등을 가져왔고, 이사비용이 많이 들며, 한꺼번에 쏟아져 나오는 많은 양의 쓰레기를 처리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그리고 첨단과학기술시대인 오늘날에는 전화, 가스, 유선방송, 인터넷 등의 관련 업체에서는 신구간에 이들을 다시 설비하느라 비상근무를 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행정관청에서는 6, 70년대부터 신구간을 6대 악습 가운데 하나로 규정하여 폐지하려고 많은 노력을 하기도 하였다. 신구간은 제주의 고유한 풍습으로 될 수 있었던 데는 그 나름의 이유가 있을 것이다. 따라서 신구간을 체계적으로 이해할 경우 제주 문화의 핵심을 이해하는 길이 열릴지도 모른다.

그러나 신구간의 유래를 찾기는 쉽지 않다. 조선시대 후기 이후에 나온 세시풍속서에는 신구간 풍습에 대한 기록이 없다. 그리고 조선시대에 제주에 파견된 목사(牧使)와 유배왔던 선비들이 남긴 제주 관련 풍토지뿐만 아니라, 식민지 시대에 일본인 학자들이 남긴 제주 관련 문헌이나 기록에도 없다. 논자가 탐색해본 결과, 신구간과 관련된 첫 기록은 1953년 1월 21일자 ‘제주신보’에 “신구간 앞두고 방세 껑충, 연중관례로 이사하는 시기인 신구간을 앞두고 셋방살이하는 피난민들에게 일부 집주인들이 엄청난 방세를 요구하고 있다….”라는 보도이다. 그렇다고 해서 신구간이 해방 이후에야 생겨난 풍습이라고 할 수는 없다.

민속학자들은 대체로 신구간의 유래를 성여훈이 1636년에 간행한 ‘천기대요’의 세관교승(歲官交承)조에서 찾는다. 즉 신구간은 “대한 후 5일과 입춘 전 2일은 신구세관(新舊歲官)이 교대하는 때이므로, … 집을 짓고 장사를 지내도 불리함이 없다.”는 데서 비롯되었다는 것이다. 그러한 세관교승에 대한 이야기는 1700년경에 홍만선이 펴낸 ‘산림경제’에도 실려 있다. 그러나 그 두 책이 조선시대 후기에 조정과 민간에서 널리 읽혔다는 사실을 고려한다면, ‘세관교승’만 가지고는 신구간 풍습이 왜 육지부에는 없고 제주도에만 있는지를 설명할 수 없다.

이에 대해 제주도는 육지부에 비하여 무속(巫俗) 신앙이 성했기 때문이라는 가설도 제기할 수 있다. 하지만 원로 무속학자인 현용준 교수에 따르면, 제주도의 심방들이 구송하는 경전인 무가(巫歌)의 본풀이 어디에도 신이 대한과 입춘 사이에 하늘로 올라가거나 내려온다는 이야기가 없고 신구간에 대한 이야기도 없는 것으로 보아, 신구간이 제주도의 무속 신앙에 기인한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부족하다고 한다.

최근에 제주도의 민속학, 무속학, 유학, 향토사학 등을 오랫동안 연구해온 몇몇 분들과 대담해 본 결과, 신구간이 제주도의 농사력과 고온다습한 기후와 관련 있을 것이라는 대해서는 대체로 일치했지만 나머지 부분에 대해서는 상당한 견해차가 있음을 확인하였다. 따라서 좋든 궂든 신구간이 우리의 고유한 풍습이라면, 그 연원을 좀 더 체계적으로 밝히고 그 의미를 새겨서 오늘날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이어갈 것인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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