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차르트 쿠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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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는 천재 음악가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1756-1791)가 태어난 곳이다.

찰츠부르크는 유럽의 어느 지역처럼 조그만 소도시에 지나지 않지만 모차르트로 인해 세계적인 관광지가 되고 지역 경제를 살리는 원동력이 될뿐 아니라 오스트리아 전체 경제에도 지대한 영향을 주고 있다.

포장지에 모차르트의 얼굴을 인쇄한 초콜릿인 ‘모차르트 쿠겔’은 찰츠부르크를 대표하는 관광상품이다.

1880년대부터 나온 이 초콜릿은 지난해의 경우 30여개국에 9000여만개가 수출될 정도로 큰 인기다.

올해도 1억개 정도가 팔릴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탄생 250주년을 맞는 올해는 그의 이름과 얼굴을 이용한 각종 상품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의류,그림카드,요구르트,소시지등은 물론 인터넷게임도 출시되고 있고 피아노를 치는 모차르트 인형이 나오고 등등 모차르트를 브랜드로 하는 상품들이 넘쳐나고 있다.

인구 15만에 지나지 않는 찰츠부르크는 매년 57개국에서 몰려드는 해외관광객으로 인해 경제적으로 풍족함을 누리고 있다.

그를 기리기 위해 1920년에 시작된 잘츠부르크 패스티벌은 연간 200여회의 공연이 열리고 수십만명의 관광객이 다녀갈 정도로 세계적인 음악제로 명성을 얻고 있다.

오스트리아 정부는 모차르트 브랜드가 8조8000억원의 가치가 있다고 추산하고 있다.

그런 모차르트 이지만 실상 그의 생애는 행복하지 못한 듯 싶다.

어릴적부터 신동이란 소리를 들을 정도로 음악의 천재였던 그는 짤막하고 화려한 시절을 보내고 어려움을 겪다가 35세의 젊은 나이에 요절했다.

타협이나 구속받기를 싫어했기에 그는 천재적 음악성에도 불구하고 점차 사람들로부터 외면받기 시작했고 나중엔 생활비가 없어 지인들로부터 도움을 받아 겨우 연명할 정도로 비참했다 한다.

스스로 죽음을 예감한 듯 미사곡 ‘레퀴엠’을 작곡하던 그는 끝내 곡을 완성하지 못하고 죽었고 장례식은 가족과 친지들도 없는 가운데 빈민묘지에 다른 4-5구의 시신과 함께 묻혀 지금은 그의 시신조차 찾지못하고 있다.

그의 사인도 심장질환,열병,신장결석,선모충병,독살등 150여가지에 이를 정도로 의견이 분분하다.

그런 그가 지금은 오스트리아의 상징으로 추앙받고 세계인의 사랑을 받고 있다.

모차르트가 위대한 음악가 후대에 명성을 얻는 것은 그의 재능이 뛰어나 탓도 있지만 그를 만들어낸 국민들이 있기에서다.

위대하고 존경할만한 인물을 만들기 보다는 남의 잘되면 배 아파 하고 어떻게든 꼬트리를 잡아서 흠집내고 끌어내리기에 바쁜 우리네 풍토에서는 그저 부러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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