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럼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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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신대륙 아메리카를 발견한 크리스토퍼 콜럼버스가 사망한지 5백주년 되는 해이다.

요즘 유럽에선 이를 기념해 그의 혈통을 찾는 연구가 본격화되고 있다. 이 연구로 5백년 동안 수수께끼로 남아있던 그의 무덤에 대한 진위여부도 가려질 전망이다. 이 때문에 미국과 유럽이 들썩이고 있다.

그의 무덤 찾기가 미국과 유럽에서 큰 관심을 끌고 있는 이유는 그가 미국과 유럽사에 막대한 영향력을 끼쳤기 때문이다. 그의 신대륙 발견은 유럽에 있어 역사상 매우 중요한 전환점이었다. 신대륙을 유럽인에게 개방시켜 늘어나는 인구난을 해소하는 등 정치 사회 문화 등 모든 방면에서 변화를 가져왔다. 신대륙은 특히 광물자원과 원자재 등을 공급해 유럽경제를 변혁시켰다.

<>미국 입장에선 콜럼버스는 사실상 건국의 아버지라 할 수 있다. 그가 없었다면 지금의 미국이 없었을는지 모른다. 때문에 미국은 그가 1492년 아메리카에 도착한 날을 콜럼버스의 날로 정해 축제를 벌이고 있다. 이날은 독립기념일과 함께 가장 중요한 미국의 국경일이다.

그러나 인디언에겐 콜럼버스는 역사적 재앙을 가져다 준 인물이다. 그들에게 있어 신대륙 발견은 멸망의 시작을 알리는 비극적인 역사적 사건이었기 때문이다. 또한 ‘신대륙 발견’이라는 표현도 잘못된 것이다. 인디언들이 살고 있는 땅에 콜럼버스가 유럽인으로서 처음으로 방문했을 뿐이다. 더불어 인디언들은 그가 이때 ‘파괴와 학살의 씨앗’을 가져왔다고 믿고 있다.

<>콜럼버스가 그 땅에 도착할 당시 아메리카 전체의 원주민은 최소 1천만명 이상에 달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그러나 이들은 서양인의 미국정착이 본격화되면서 빼앗긴 땅에서 스러져 갔고, 그 학살의 역사는 이들과 함께 땅속에 묻혔다.

이 과정에 찬란했던 잉카문명 등이 역사속으로 사라졌다. 동시에 유럽의 식민지 건설사업이 본격화됐음은 물론이다.

2002년 우고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은 이점을 맹비난하며 ‘콜럼버스의 날’을 ‘원주민 저항의 날‘로 바꾸는 대통령령을 공포하기도 했다.

올해 사망 5백주년을 계기로 콜럼버스에 대한 엇갈린 평가가 북미와 남미에서 맞설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지하에 있는 콜럼버스도 착잡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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