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기정 월계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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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6년 8월 9일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에서 승리의 월계관을 쓴 그날, 나는 일장기 아래서 감격과 울분이 뒤섞인 눈물을 흘렸다. 우승자답게 당당하게 걸어가자. 절룩거리지 않으려고 애쓰며 시상대 맨 윗단에 올라선다. 2위는 하퍼, 3위는 남승룡 선배. 금메달이 목에 걸리고 승리의 월계관이 머리에 씌워지고…”(손기정의 자서전 ‘나의 조국 나의 마라톤’ 중에서)

서울시는 1982년 만리동에 손기정공원을 조성했다. 공원에는 손기정 월계수 나무가 심어져 있다. 월계관수다. 마라톤 우승후 손기정이 독일의 히틀러 총통으로부터 받은 것을 심은 것이다.

▲올해는 손기정 탄생 100주년이 되는 해다. 마라토너 손기정(1912~2002)이 일제강점기 때 올림픽 마라톤에서 우승하며 받은 금메달과 우승 상장, 그리고 시상대에서 쓴 월계관이 문화재로 등록된다.

문화재청은 손기정기념재단이 소장한 이들 유품을 한국인 최초로 올림픽 금메달을 획득한 체육사·민족사적 가치가 큰 유물로 평가해 문화재로 등록 예고했다고 지난 9일 밝혔다.

당시 우승 부상으로 받은 고대 그리스 투구는 50년 만인 1986년 반환을 받아 서구 유물로는 처음으로 보물 904호로 지정된 바 있다.(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손기정의 베를린 우승 후 꼭 40년 만인 1976년 7월 몬트리올 올림픽 레슬링에서 양정모가 광복이래 첫 금메달을 획득했다. 올림피아드에 처음 태극기가 오르고 기미가요가 아닌 애국가가 울려 퍼진 순간이었다. 이후 후배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들이 숱한 감동을 전하며 승전보를 전해 왔다.

비극의 시대. 긴 암흑의 터널을 뚫기 위해 수많은 길을 달리고 또 달렸다. 얼어붙은 자갈길을 뛰고 또 뛰어, 마침내 올라선 마라톤 세계 정상. 그러나 그가 맛본 것은 끝없는 좌절감뿐이었다. 나라 없는 자의 우승 영광은 가당치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이제 손기정의 베를린 올림픽 우승 관련 유물이 모두 문화재가 된다.

“제 나라 땅 위를 구김없이 뛸 수 있는 젊은이들은 행복하다.” 생전에 손기정이 자주 했던 말이다.



김홍철 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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