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반하장의 계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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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한. 한림대 정치행정학과 교수
말로만 듣던 보이스피싱 전화를 얼마 전 받았다. 중국 말투가 조금 섞인 남자가 서울검찰청이라고 말하면서 보이스피싱 관련으로 내 명의가 도용되고 있으니 검찰청으로 출두하라는 내용이었다. 보이스피싱인 것 같다고 생각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한 중국동포가 한국 경찰관으로 특채됐다는 뉴스를 본 적도 있고 해서 진짜일 가능성이 아주 조금은 있을 것이라는 걱정뿐 아니라 보이스피싱이 어떤 것인지 궁금한 호기심에서 전화를 끊지 않고 오랫동안 통화하게 되었다. 통화가 길수록 사기라는 생각이 더 들게 되었다. 한참 지난 후 전화 속의 남자는 중국동포 사투리의 욕설과 아마 중국어 욕설인 것 같은 알 수 없는 말로 고함을 질렀다. “방귀 낀 놈이 성낸다” 속담을 연상시킬 정도로 그 남자는 분을 삭이지 못한 말투로 욕설을 내뱉었고 전화를 끊어버렸다.

그 이후 보이스피싱에 관해 인터넷을 검색해보니 보이시피싱에 대해 조롱하고 장난친 실제 녹음 내용들을 들을 수 있었다. 이를 ‘역관광’이라는 네티즌 은어로 부르고 있다. 상대방을 공격하려 했는데 오히려 자기가 크게 당하는 경우를 일컫는 신조어이다.

필자의 경우엔 상대를 조롱하는 역관광까지 한 것이 아니고 그냥 자세히 반문했던 것뿐인데, 심한 욕설을 듣고 나니 황당하였다. 살인 미수이든 사기 미수이든 성공하지 못한 범죄행위도 처벌 대상이다. 필자를 속이려고 했던 그 남자는 필자에게 사과했어야 했다. 그런데 피해자가 될 뻔했던 필자에게 그 남자는 사과는커녕 오히려 심한 욕을 했다. 아마 그 남자는 필자가 자기를 우롱했고 아까운 시간도 낭비시켰다고 생각하여 욕한 것 같다. 글자 그대로 도적이 매를 드는 적반하장(賊反荷杖)이다.

보상 심리나 기대 심리가 있었던 도적은 도적 행위가 실패했을 때 매를 든다. 나쁜 행위를 저지르는 자는 그 나쁜 행위로 자신이 불명예를 안기 때문에 더 큰 보상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큰 보상이 가능하리라고 기대했기 때문에 나쁜 짓을 했을 것이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이기 때문에 나쁜 행위는 그 좌절감을 통해서라도 처벌을 받게 된다.

제1차 세계대전에서 동맹국들과의 약속을 저버리고 전승연합에 편들었던 이탈리아는 동맹국이었던 독일과 오스트리아에게 좌절감을 주었다. 그 좌절감은 배신한 이탈리아도 겪었다. 전리품 배분에 있어서 큰 몫을 얻지 못했기 때문이다. 전승국들은 이탈리아의 공을 별로 인정하지 않았다. 이탈리아는 배신했기 때문에 오히려 더 큰 보상을 기대했던 것 같다. 그렇게 되지 못한 이탈리아의 좌절감은 극우정권을 등장시켰고 결국 제2차 세계대전에서는 독일과 함께 패전국으로 전락하였다.

국회의원선거와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정치인의 이합집산이 급속히 진행되고 있다. 임기 말의 현직 대통령을 비난하는 행위도 더 잦아지고 있다. 대통령의 입장에선 자신이 도와주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비난에는 ‘물에 빠진 놈 건져 놓으니까 봇짐 내라 한다’는 배신감을 느낄 것이다. 그렇지만 당사자들은 자신이 배은망덕했거나 배신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각종 평가에서 어떤 공개되고 일관된 원칙에서 의해 탈락된 사람 가운데 자신이 부당한 대우를 받았다고 생각하거나 객관적 지적에 대해 적개심으로 받아들이는 경우는 많다. 반대로 자신이 편파적으로 좋게 평가받았을 때에는 정당하게 평가된 것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하루에 천리를 달리는 천리마 꼬리에 붙은 파리처럼, 좋은 마음과 능력 없이 권력자 주변에 있었다는 이유로 온갖 혜택을 누린 사람도 있다. 훌륭한 능력도 없고 착한 마음도 없어 나쁜 짓을 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에 대해선 그들을 중용한 권력자의 책임도 크다.

보이스피싱 피해의 건수와 금액은 작년에 역대 최대였다고 금융위원회는 밝혔다. 보이스피싱 피해를 방지하기 위해 피해자가 돈을 사기범에게 잘못 보냈더라도 바로 인출되지 않도록, 또 피해자가 카드대출금을 신청 즉시 받을 수 없도록, 또 공공기관 전화번호를 발신자로 해서 피해자에게 전화 거는 것을 원천봉쇄하는 대책 등이 곧 실시된다고 한다. 사기범이 본색을 숨길 수 없도록 또 피해자가 일순간 속더라도 복구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공직 후보자들에 대해서도 순간적인 화장발에 속지 않도록 허상이 아닌 실상을, 즉시가 아닌 시차를 두고 평가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러한 조치는 유권자뿐 아니라 권력자의 후회 없는 판단에도 필요하다. 무엇보다도 공직을 남에게 베푸는 전리품으로 여기지 않도록 공직에 대한 엄격성이 더욱 강조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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