걱정하는 게 좋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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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범진 제주대 에너지공학과 교수/ 논설위원
살다보면 수많은 선택의 순간을 맞는다. 학업을 지속할지, 어떤 직장을 택할지, 배우자의 결정, 심지어 메뉴까지도 다 결정이다.

선택은 어떻게 내려질까?

두 가지이다. 이득이 되는 쪽으로 선택할 것이다. 이건 이성적인 경우이다. 그러나 인생이 이성만으로 사는 것은 아니다. 감성으로 선택하기도 한다. 한마디로 끌리는 쪽으로 택하는 것이다. 보통은 이성으로 선택을 하는 것이 좋다. 그러나 이성으로 선택한 경우 나중에 감성으로 택하지 않은 것에 대해 후회를 하는 순간이 오기도 한다. 성공은 했지만 행복은 하지 않았다고 여겨지는 순간이 오는 것이다. 감정으로 선택을 하는 경우에는 후회를 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성공한 사람은 그 아래를 볼 수 있지만 아래에서는 위가 보이지 않기 때문에 후회할 이유가 없어진다. 비교 대상을 모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후회를 하더라도 이성적인 선택을 하는 것이 나는 좋다고 본다. 성공하고서 감정적으로 즐기지 못했다고 후회하는 것과 실패해서 어렵게 살면서 어릴 적에 더 공부할 걸 그랬다고 후회하는 것은 같은 후회가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시험공부를 하는 학생들을 보면 공부를 하는 데 많은 시간을 보내는 학생도 있지만 공부 대신 걱정을 하면서 시간을 보내는 학생도 있다. 걱정을 하는 학생은 삼삼오오 모여서 서로 누가 공부를 덜 했는지에 대해서 얘기한다. 그리고 이번 시험이 중요하다는 둥 하는 실천에 옮기지도 못하는 너스레를 떨기도 한다. 이 시간에 공부를 해야 하는데 걱정을 한다.

공부와 걱정 가운데 걱정을 택했다면 걱정하는 것이 이득이 되거나 감정적으로 끌리기 때문이다. 걱정하는 것이 이득이 된 것은 아닐 테니 걱정하는 것이 좋아서 택했을 것이다. 그럼 사람이 걱정하는 것을 좋아할까? 실은 걱정하는 것을 좋아서 택한 것이 아니라 공부하는 것이 싫어서 택한 것일 것이다.

차라리 그럴 거라면 아예 놀고 말지. 공부가 아닐 바에는 놀거나 집에서 자는 것이 더 이득이 된다. 그런데 사람들은 공부하기 보다 모여서 걱정하기를 택한다. 물론 다수가 옳은 것은 아니다. 성공하는 사람이 다수일 수는 없는 것이니까.

이렇게 보면 걱정하는 것을 즐기는 것 같기도 하다. 명절에 가족이 모이면 정치 이야기를 하고 논다. 실은 이들이 정치 이야기를 하든지 말든지 달라질 것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또 해결되지 않을 것 같은 제주의 문제들도 많이 있다. 해군기지 문제, 한라산 케이블카 문제, 지하수 고갈의 우려, 송전선의 지하 매설 등의 몇 가지 걱정거리를 돌려가면서 이거 조금 가지고 놀다가 싫증나고 골치 아파지면 다른 것으로 걱정하고 그렇게 노는 듯하다.

날라리 2명이 앉아서 대화를 한다. 우리 이렇게 살면 안되는데 공부해야 하는데…. 그런데 생활은 달라지지 않는다. 걱정을 재미로 하는 것이다. 좋은 놀 거리다.

걱정을 하는 대신에 계획을 세우고 실천을 하여야 한다. 걱정만 하는 것은 자기 자신만을 괴롭히는 것이다. 걱정과 계획의 차이는 이것이다. 걱정은 아무리 많이 해도 원점 근처에서 맴돌 뿐 진도가 나가지 않는다. 계획은 진도가 나간다.

걱정을 하는 사람을 보면 한심하고 측은하고 불쌍하다. 머리가 나쁜 것이다. 자기가 그렇게 놀면서 인생을 낭비하고 자기 자신을 괴롭히는지를 모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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