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시 상징조형물 선정 잡음과 문화예술정책 실종 유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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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시 상징조형물 선정 잡음과 문화예술정책 실종 유감

요사이 제주미술계는 또 다시 조형물과 관련한 논란으로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사연인즉 제주시가 전국공모 방식으로 시상징조형물을 공모하면서 용역보고서 내용을 무시하고 제주의 대표적인 미술단체의 자문이나 참여를 배제한 채 한국미협에 일방적으로 대다수의 심사위원 추천 인원을 배정하였다. 그 결과 선정 작품 모두 한국미협이 추천한 심사위원들에 의해 몰표가 주어져 당선됨으로써 결과적으로 제주미술인들은 철저히 소외당하는 어처구니없는 결과를 낳았다.

사실 제주 미술계에서 조형물과 관련한 의혹과 논란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그렇다보니 그 잘잘못을 떠나 제주 미술계 전체를 비판적으로 폄하하는 가슴 아픈 경우도 없지 않았다. 하지만 여전히 문제의 본질은 풀리지 않고 버젓이 활개치고 있음을 본다. 어떻든 금번 사태와 이전의 논란은 근본적으로 다른 의미를 갖고 있다. 필자는 이번 상징조형물 사태를 보면서 논란의 중심에서 조금은 비켜 서 있는 듯 보이는 제주의 정체성과 관련한 심각한 우려를 갖지 않을 수 없다.

‘시상징조형물’은 일반적인 환경조형물과 달리 해당 주체의 정체성을 상징하는 조형물을 말한다. 그것은 해당 주체의 미학적, 역사적, 문화적, 인문지리학적 세계관을 포괄적으로 담아내는, 말 그대로 자신의 얼굴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모 심의과정부터 정작 제주문화의 정체성에 대한 심도 깊은 논의가 실종됨을 보던 심정은 제주 예술인의 한 사람으로서 기가 찰뿐이었다.

문화란 그 사회를 이루는 삶의 형식이며 가치체계, 사유방식을 총칭하는 것으로 인간이 한 공동체의 구성원으로서의 삶을 가능케 하는 가장 근원적인 요소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기에 예로부터 “문화를 잃으면 나라를 잃는다”고 했다. 그것은 지역 공동체에 있어서도 그대로 적용되는 진리임에 의심의 여지가 없다. 오늘날 ‘문화’는 사회 전 분야의 키워드로 자리하고 있다. 이제 문화적 마인드가 없이는 기업도 살아남을 수 없는 시대이다. 흔히 21세기는 ‘문화의 세기’, ‘문화 전쟁의 시대’라고 입을 모으는 것은 바로 그런 연유에서다. 바야흐로 사회 전 분야에 걸쳐 문화는 더 이상 인간의 생존을 위한 ‘충분조건’이 아니라 ‘필요조건’으로 인식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문화전쟁 시대에 ‘관광’을 모토로 하는 제주의 경우에는 더더욱 독자적 문화예술을 온전히 보전하고 발전시켜 나가는 것이 당장의 제주 관광전략에 있어서도 더 없이 중요한 핵심 키워드일 수밖에 없다. 그런 관점에서 금번 상징조형물 공모 선정 과정에서의 제주미술인 소외 사태는 제주 문화예술계의 ‘문화적 생존권’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사례라 아니할 수 없을 것이다.

21세기 문화전쟁의 시대에 한 나라의 국력은 그 국가의 문화적 역량에 의해 결정된다. 지역사회 또한 예외일 수 없다. 따라서 특정 지역의 번영은 해당 지역의 문화예술의 성숙도에 의해 결정된다고 봐야 옳을 것이다. 최근 아시아 전역을 휩쓸고 있는 ‘한류’는 문화가 얼마나 큰 부가가치를 만들어 낼 수 있는지 우리에게 새삼 일깨워주고 있다.

단언하건데 ‘관광제주’, ‘국제자유도시’의 장밋빛 미래 역시, 제주 문화예술의 그것과 다르지 않다. 자기 문화를 상실한 땅에서 미래의 꿈은 터 잡을 곳이 없기 때문이다. “가장 제주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다”라는 식상한 말을 빌릴 필요도 없이 우리 지역문화의 자기 정체성 확립과 그 독자성을 지키고 발전시키는 일은 ‘국제자유도시’ 제주로 세계인을 불러 모을 수 있는 가장 큰 유인책이며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 원천요소다.

차제에 제주시는 상징조형물 심사담합 의혹은 차치하더라도 자신의 얼굴을 세우려는 일에 있어 자기 정체성에 대한 사려 깊은 논의와 준비를 갖추지 못하였음을 부끄럽게 생각하고 더 이상 무모하게 역사적 오류를 범하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라는 바이다.

<홍성석. 미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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