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품(花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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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과 들, 여기 저기 푸르름이 완연하다.

산에 오르면 이름조차 없는 들풀들이 저마다 봄날의 향연을 벌이는 듯 하다.

누구하나 돌보아 주는 이 없는데도 봄이면 어김없이 언 땅을 뚫고 올라와 그 끈질긴 생명력을 과시한다.

그저 오가며 잡초려니 하고 무심코 지나쳤던 풀들이 예쁘고 작은 꽃을 피우는 것을 보면 놀랍기만 하다.

캐어가 화분에 옮겨 심으면 어떨까했지만 이내 생각을 고쳐먹는다.

들꽃은 들에 있어야 제멋이고, 또 들에 있어야 살 수 있다.

▲우리 옛 선비들은 꽃을 무척 사랑했다.

꽃을 좋아하기도 했지만, 꽃을 좋아하는 시각이 지금과는 전혀 달랐다.

사람에게 인품이 있듯이, 꽃에도 화품(花品)이 있었다.

사람을 판단할 때 잘 생기고 못생기고, 예쁘고 밉고, 벼슬이 높고 낮고, 재물이 많고 적고 하는 외색(外色)으로 따지지 않고 뜻이 있고 의로움이 있고, 곧음이 있고 덕이 있으며, 정이 있고 없고의 내색(內色), 즉 인품을 보고 가까이 하고 멀리 했다.

마찬가지로 꽃도 외색이 아니라 내색을 보고 그 기준으로 삼았다.

▲옛 선비들은 사랑하는 사람이나 친지들에게 한 수 시(詩)를 지어 보낼 때, 꽃을 함께 그려 보내길 즐겨했다.

시의 내용도 내용이지만 꽃이 전하는 뜻도 의미가 컸다.

이를 테면 눈 속에서 피어나는 매화, 서리 맞고도 피는 국화, 진흙 속에서 피는 연꽃은 뜻이나 절개가 그 화품이요, 치자꽃, 동백꽃, 사계화 등은 깐깐한 기골이 그 화품이요, 모란과 작약은 부귀가 화품이며, 해바라기, 두충은 충(忠)과 열(烈)이 화품이고, 박꽃, 맨드라미, 봉선화는 박실(朴實)하고 성실함이고, 진달래, 개나리는 분명한 거취가 그 화품이다.

▲그 뿐만 아니다.

선비가 자기 집 안뜰에 심은 꽃을 보고도 그 선비의 인품을 내색했을 정도로 아무 꽃이나 가져다 심지 않았다.

청렴하게 살다가려는 한사(寒士)들은 집 뜰에 붉은 빛 모란이나 작약을 심지 않고 박이나 앵두를 심어 하얀 꽃을 피우길 즐겨했다.

또 새해에 거취를 결정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선비들은 한해 전, 봄날에 개나리나 진달래를 뒤뜰에 심어놓고 새봄이 오기를 기다렸다.

문득 창밖에 산을 바라보며 그 이름모를 꽃의 화품을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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