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의 봄은 다시 왔건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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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상문 영남대 영문과 교수.문학평론가/ 논설위원
지난겨울에는 유난히 눈비가 많았던 탓인지 새봄이 오기도 무척 힘이 드는 듯하다. 그래도 어김없이 새로운 계절은 우리들 곁에 성큼 다가와 제주 섬 곳곳에는 유채꽃을 비롯한 봄꽃이 활짝 피고 있다.

봄기운은 겨우내 움츠리고 있던 우리에게 기지개를 펴게 하지만 마음은 왠지 우울하기만 하다. 어디를 둘러보아도 새봄과 함께 즐겁고 기쁜 소식이 들리기보다는 무겁고 어두운 소식이 많다.

제주 강정마을에 있는 용암바위 구럼비는 발파와 저항으로 다시 뜨겁다. 구럼비바위를 폭파하는 데 사용되는 폭약이 43t이나 된다고 한다. 4·3의 상흔(傷痕)이 문신같이 온몸에 새겨져 있는 제주 사람들에게 하필 43이라는 숫자가 다시 등장하는가 생각하니 씁쓸하다.

건설과 개발의 이면에는 언제나 파괴가 있다. 무언가를 새롭게 만들기 위해서는 자연을 부수고 사람을 약탈하고 공간과 시간, 생명과 평화를 파괴해야 한다. 지금 구럼비바위는 눈물을 흘리며 산산조각 부서지고 있다. 천년세월을 대대로 자신들의 소중한 삶의 공간으로 생각하며 함께 살아오던 구럼비가 부서지는 것을 보며 강정마을 사람들은 절망하고 있다.

왜 하필 제주에서인가. 지금이라도 다시 한 번 생각해보고 다시 대화해야 한다. 도대체 이 정부는 무슨 일에 있어서든, 아니 국민들의 관심을 끄는 중대한 일일수록 대화나 갈등 해결을 위한 노력은 없이 무조건 밀어붙이면 된다는 식으로 일을 해결하려든다. 4대강 사업과 한미 FTA가 그랬고, 제주의 해군 군사기지도 그렇다.

해군 군사기지로 인해 마을 공동체는 갈가리 찢겼다. 제주는 공동체적 가치를 존중하는 해녀문화와 마을 공동 소유가 가능할 정도로 공동체적 특성이 강한 곳이다. 그런데 해군기지 때문에 강정마을 공동체는 와해됐다. 순박한 농·어부들이 서로 등을 돌리고, 부모 형제 사이도 찬반으로 나뉘어 말도 안 건네는 지경이 되었다. 해군기지가 아무리 중요해도 주민들이 이런 대가를 치러야 할 이유는 없다. 군과 정부가 주민들에게 그 중요성을 충분히 납득시키고 자치적 결정을 할 수 있게 했더라면 지금과 같은 극한적 상황이 일어나지는 않았을 것이다. 제주도는 지금 와서 뒤늦게 공사 중지를 요청하고 청문 일정을 협의하는 등 요란을 떨고 있지만, 이 무슨 사후약방문(死後藥方文)인가.

제주의 나무와 풀과 돌을 언제까지나 그 자리에 놔두어야 한다는 뜻이 아니다. 그러나 제주에만 있는 소중한 것들은 누가 뭐라 해도 지켜야 한다. 그것들이 없으면 제주 섬의 존재 의의가 없고, 제주 섬이 없으면 제주사람들의 삶이 없어진다. 제주만의 소중한 것을 다 부수어가며 군사기지를 세워서 무엇을 지키려는가. 그것이 ‘평화의 섬’을 만드는 길이고, ‘세계 7대 자연경관’을 만드는 일인가.

많은 사람들은 개발지상주의·과학기술주의에 미쳐있다. 개발과 과학기술과 돈을 숭상하는 이들은 자연을 거리낌 없이 뒤집고 파헤쳐서 자신들만이 살고자하는 이기심에 사로잡혀 있다. 개발과 건축을 추진하여 자신들의 눈앞의 이해만 생각할 뿐 후손과 후세의 삶은 생각지 않는다.

자연은 인간과 함께 공존해야 할 대상이지 정복의 대상이 아니다. 자연을 정복하겠다는 인간의 교만한 마음은 인간과 자연의 소중한 관계를 파괴하고 이 지구를 갈수록 파멸로 이끌어 가고 있다. 내가 산이 되고 바다가 되어 겸손하게 자연 속에 안길 때 산과 바다는 우리와 함께 존재해 줄 것이다. 자연은 우리가 마음대로 개발하고 이용해야 할 물건이 아니다. 우리 모두가 소중하게 간직하다 후손들에게 물려주어야 할 자산이다.

구럼비바위는 부서지고 있고, 중국은 제주의 남쪽 섬 이어도에 대한 관할권을 주장하고 있다. 꽃이 핀다고 봄이 온 것은 아니다. 지금 제주의 봄은 봄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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