챙겨먹기
챙겨먹기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페이스북
  • 제주의뉴스
  • 제주여행
  • 네이버포스트
  • 카카오채널

정범진 제주대 에너지공학과 교수/ 논설위원
내가 다니는 교회 성가대는 매년 친목을 도모하는 모임을 가진다. 나는 항상 이 모임에 상품을 후원하였다. 그런데 정작 당일에는 다른 일이 생기는 바람에 한 번도 참여하지 못하였다. 그렇게 되면 휴지라도 꼭 챙겨준다. 후원을 하고서 불참한 사람이기 때문에 챙겨주는 것이다. 챙겨주는 이유는 그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고마운 일이다.

내 권리를 챙겨먹지 못하는 것은 억울한 일이다. 그런데 그것보다 더 큰 먹을거리가 있다면 더 큰 쪽으로 가는 것이 옳다. 아깝다고 해서 사소한 것을 챙기다가 더 큰 것을 챙기지 못하면 더 큰 손해가 되기 때문이다.

대학의 등록금을 낮추자는 사회적인 목소리가 있다. 학생들도 같은 목소리를 낸다. 싸게 대학을 다닐 수 있다면 좋을 것이다. 그럼 등록금을 낮추는 것과 같은 크기의 목소리로, 같은 등록금을 내되 좀 더 많이 배우고 보다 더 좋은 교수에게 배우겠다고 주장할까? 그렇지는 않다.

인력 양성을 위한 연구비를 마련해서 학생들을 서울로 교육을 보내면 이 학생들은 기회를 십분 활용하여 오랫동안 만나지 못했던 친구를 만나거나 쇼핑을 하거나 서울 구경을 하는 등 잘 활용한다. 그런데 정작 교육은 제대로 받지 않고 오는 경우가 많다.

비행기에서 자기 차례를 지키지 않고 뒷자리에서 뛰어나오면 조금 일찍 내릴 수 있다. 그런데 그 사람이 정말 5분도 안되는 작은 시간을 소중히 여기면서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일까?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다. 정작 자기에게 주어진 시간은 잘 쓰지도 못하는 사람도 남에게 양보할 시간은 없다.

대형마트의 시식코너에서는 반드시 양껏 챙겨먹는다. 맛을 보고 구매 여부를 결정하는 것보다 공짜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체중 감량을 위해서 다이어트를 하면서도 시식의 욕구를 버리지 못한다. 그게 때로는 게걸스러워 보여도 괘념치 않는다.

중요한 공부를 하다가도 공짜 만찬이나 놀 수 있는 기회가 생기면 반드시 유혹에 넘어간다. 공부는 유혹이 없을 때나 하는 일이고 학생이라는 신분 획득의 수단일 뿐이다.

시장에는 일명 또순이라고 불리는 생활력 강한 노점상 아주머니가 있다. 새벽에 일찍 나와서 목이 좋은 자리를 차지한다. 값싸고 좋은 물건을 떼어서 장사도 잘한다. 주변의 상인과의 사소한 분쟁에서도 반드시 싸워서 이긴다. 또 손님들에게도 지지 않는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돈을 벌어서 노점상을 벗어나 가게를 차리는데 이 아주머니는 몇 십 년째 노점상을 벗어나지 못한다.

이득을 챙겼으면 잘 살아야 하지 않겠는가? 주변 사람에게 하나도 양보하지 않고 이득을 챙긴 사람이 왜 잘 살지 못하는가? 그건 싸움에서 져준 주변 사람에 대한 배신이다. 독기를 품고 싸우면 이길 수 있다는 것을 몰라서 져준 것이 아니다.

영화 ‘아저씨’에서 원빈의 대사 가운데 이런 것이 있다. “내일을 보고 살아가는 놈들은 오늘만 살아가는 놈들에게 진다.” 분명히 모든 싸움에서 이겼고 챙겨먹을 모든 것은 챙겨먹었다. 그런데 내일을 챙기지 않았다. 이들에게 오늘이 더 중요한 것이다. 싸움이 나면 옳고 그른 것을 따지지 않고 무조건 이기려고 거짓말도 서슴지 않는다. 거짓이 드러나는 것은 나중에 걱정할 일이다. 아니 걱정도 안한다.

이쯤 되면 내가 본능대로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인지 내일을 위해 살아가는 사람인지 돌아봐야 한다. 자신을 돌아보고 잘 살고 있는지 봐야 한다. 잘 살고 있지 않다면 자기의 지능과 판단력과 의지를 의심해 봐야 한다. 또 잘 사는 사람의 말을 들어야 한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