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괸당들의 국회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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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윤호/영화감독.'아이리스' 연출자/논설위원
흐드러지게 필 벚꽃처럼 4·11 총선을 앞두고 선거바람이 요동치고 있다. 민심 또한 이리저리 흔들리고 있다. 한국에 오래 산 외국인 친구 말에 따르면 한국인처럼 정치에 예민한 국민은 세계적으로도 드물 거라고 한다. 선거를 앞두고 뜻대로 안 되면 이민 간다는 사람, 손가락에 장 지지겠다는 이마저 생겨나는 현실이니 딱히 반박할 말도 없다. 그러다 정권 말기가 되면 이럴 줄 몰랐다는 듯이 투표한 자신의 손을 자르고 싶다는 과격한 표현마저 반복되니 설명이 난감해진다. 외국인 눈에는 좀처럼 이해할 수 없는 풍경들인 것이다. 제주의 사정은 더 염려스럽다. 평소 친하게 지내던 사람들이 선거 한번 치르고 나서 겪는 후유증은 선거 당사자들만큼이나 심하다. 과도한 스트레스와 신뢰·교류의 장애를 겪으니 참으로 안타까운 현실이다.

필자의 어린 시절, 한림읍 한림리에서 보고 느낀 국회의원은 그야말로 슈퍼맨이었다. 국회의원은 뭐든지 해결할 수 있는 만능이었고 최고의 권력이었다. 대통령은 허상처럼 생각되었고 현실에서 만날 수 있는 유일하게 살아있는 권력이 국회의원이었으니 그 존재감이 어떠했으랴….

어른이 돼서 생각해보면 국회의원은 결코 슈퍼맨이나 절대 권력이 될 수도 없고 되어서도 안 되는 직책 중 하나다. 백성의 고충과 민정을 살피고 때로는 잘못된 수령을 봉고파직하던 조선의 암행어사와 정서상 그 역할이 비슷하다. 다르다면 암행어사가 출두를 외치거나 임금에게 보고하여 백성의 억울함을 해결한 대신 국회의원은 정책에 따른 법률을 만들고 예산을 심의·의결하는 것으로 국민 편익과 행복을 도모한다. 더욱 다른 점은 암행어사의 권리는 임금에게서 나오지만 국회의원의 권리는 지역주민들에게서 위임받는다는 것이다. 따라서 국회의원 선거는 나의 권리를 대행하게 하는 것이니만큼 나와 제주 공동체에 중요한 권리이자 의무이다.

제주의 선거철마다 고질적으로 지적되는 문제점 중 하나가 “이 당 저 당 해도 괸당이 최고여!”로 대표되는 괸당문화다. 혈연·지연으로 얽힌 이해관계가 실제적 득표로 이어지기 때문에 공정성과 도덕성에 있어 심각한 결함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문제점으로 지적되는 또 한 가지는 제주의 어떤 선거든 전·현직 도지사들의 대리전이란 것이다. 마치 1980~90년대 한국정치사의 3김 시대를 연상시킨다. 3김 시대는 민주화·근대화에 공헌을 한 반면 3김씨의 지역 패권주의와 부패정치, 보스 중심의 붕당정치를 남겼다는 비판을 면치 못한다. 특히 제주에선 주연이 바뀌지 않는 구태의연한 정치로 제주도민의 외면을 받을 가능성이 점차 높아지고 있다.

과거 사람이 살기에 척박한 땅이었던 제주에서는 사람이 다였다. 노동을 위해서나 생존을 위해서나 가족·혈족·친척으로 대표되는 괸당이야말로 제주민들의 존재이유였고 생존법이었다. 더욱이 4·3의 총부리 앞에서 생겨난 외지인에 대한 경계심과 괸당에 대한 피 끓는 그리움은 아프게 이해할 만하다. 그러나 제주의 괸당은 더 잘 살아보자고, 인간답게 살아보자고 생긴 문화이지 비판의 대상이 되자고, 퇴행하자고 생성된 문화가 아니다. 예나 지금이나 홀로 살아남기 어려운 제주의 현실에서 괸당의 의미를 현실에 맞게 재해석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우선 괸당의 범위를 혈족·친척만이 아닌 제주 공동체로 확대하면 어떨까 싶다. 사전적 의미의 괸당이야 변함없이 명절을 같이 맞는 친척으로 한정되겠지만 폭풍같이 변하는 현실 앞에서 같은 운명을 가진 제주 공동체 전체를 하나의 괸당으로 여기면 어떨까 말이다. 그래서 우리 괸당들이 보다 현명한 눈과 냉철한 지혜로 우리 권리의 대행자를 뽑았으면 좋겠다. 그들은 곧 우리 괸당들의 국회의원이 될 것이다. 그러면 그들은 수없이 외쳤던 약속을 지킬 것이다. 제주도민의 진정한 심부름꾼이 되겠다는 그 약속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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