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치문답식 토론회가 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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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우리 사회에서 알게 모르게 ‘재치’라는 단어가 위세를 부리고 있다.

TV에서는 개그맨이 탤런트까지 겸업하는 ‘개탤맨’으로 등장한다. 각종 시트콤은 물론 정통극에서까지 호응이 대단하다. 이에 질세라 탤런트는 코믹 연기로 사랑을 받는 ‘털개맨’으로 변신하고 있다.
이들은 연기력과 능청스러움 속에 재치와 순발력을 적절히 조화시킨다.

지난 11월 2003학년도 대입 수능을 앞두고는 ‘재치’가 번득이는 선물이 등장, 학생들의 긴장감을 풀어준 바 있다. 문제를 잘 풀라는 의미의 ‘잘 풀어 휴지’, 합격은 식은 죽 먹기라는 의미의 ‘식은 죽 세트’ 등 상품이 선보였다.

어디 이뿐이랴. 직장이나 초·중·고 및 대학에선 재치있는 동료나 학생은 인기 캡이다.

▲TV 보급이 극히 제한적이었던 1960년대와 1970년대 초.

저녁상 설거지를 끝낸 가족들은 으레 라디오를 중심으로 둘러앉곤 했다.

이리저리 다이얼을 돌려 어렵사리 주파수를 맞춰 듣는 연속극에선 성우들의 한마디 한마디에 상상의 나래를 펴며 눈시울을 몰래 감추곤 했다. ‘어이타 북녘 땅은 핏빛으로 물들였나’로 대변된 ‘김삿갓 북한 방랑기’는 너무 애처로웠다.

그러나 곧 이어지는 재치문답 공개방송은 한바탕 웃음시간.
어눌한 말투로 퀴즈를 풀어내는 패널(재치박사)들의 순간적 재치와, 따발총처럼 쏟아내는 만담가들의 해학이 묻어났다.

이렇듯 재치문답은 고단한 하루의 피로를 풀어주는 청량제로서 청취자들로부터 인기를 누린 오락프로였던 것이다.

▲그런 웃음이 넘쳐나는 재치문답이 제16대 대선 정국에도 등장할 것 같다니 유감이다. 아무렴 대선이 웃음의 장은 아닐 터이기 때문이다.

오는 3일부터 주요 방송사를 통해 3차례에 걸쳐 생중계되는 ‘대선후보 TV 합동토론’이 자칫 하면 재치문답식으로 빠질 위험을 배제할 수 없다 한다.

언론학자들은 백화점식 질문 나열과 짧은 답변시간 그리고 이성이나 사고력보다 감성 호소가 더 잘 부각될 수 있는 TV 속성을 후보진영이 적극 이용하려 들 것이라고 지적한다.

이럴 경우 순발력과 말 재주에 능한 후보가 유리할 수밖에 없다는 것. 더욱이 상대 후보가 거짓말과 증빙이 안 된 내용을 유포할 경우 끝까지 그 진위를 추적하거나 판정할 수 없는 토론회로 전락하는 상황도 배제할 수 없다는 얘기도 들린다.

TV토론은 재치있게 말을 잘하거나 만물박사식으로 암기력이 뛰어난 대통령을 선택하기 위한 자리는 아닐 것이다.

향후 5년간 우리를 이끌 대통령의 자질을 검증하기 위한 자리가 아닌가.

유권자인 시청자들은 이 이상도 이 이하도 생각하지 말자. 이래저래 TV토론을 주관하는 대선방송토론위원회는 막판까지 질문의제 선정에 심한 홍역을 치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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