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날은 간다
봄날은 간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페이스북
  • 제주의뉴스
  • 제주여행
  • 네이버포스트
  • 카카오채널

다시 봄꽃들이 난리다. 저 잘났다고 아우성이다. 지는 꽃엔 관심도 없다. 원래 철이 됐으니 그러려니 하지만, 요 며칠 움츠렸던 모습과 사뭇 다르다. 하여 ‘무르녹는 아편 꽃물 온통 물집이 생기고/ 귓불 간지럼 태우는 날벌레 날갯짓 잦다// 코 째는, 아으! 코 째는, 꽃의 난전 이 봄날’(윤금초의 ‘난전(亂廛)’)이라며 즐거운 비명이다.

▲그러나 어디 아픔 없는 탄생이 있으랴. 스스로 피었다 지는 꽃들에게서 노(老) 선비의 회한이 묻어난다. ‘비 지나가 남은 꽃잎 반도 더 떨어지매(雨過殘紅半委廛)’//(중략) 가는 봄 오는 봄을 몇 번이나 더 보려나(春去春來更幾春)’. 조호익(1545~1609)은 가는 봄을 애석해 하며 이렇게 읊조렸다. ‘무소유’의 법정 스님은 생전에 “지금 나이엔(71세) 화사한 봄꽃의 아름다움보다 늦가을에 피는 국화의 향기로움처럼 남고 싶다”고 했다. 화려함과 겉치레를 경계했음이다.

▲해마다 4월엔 이 시, 이 노래 입 속에서 맴돈다. ‘눈이 부시네 저기 난만히 멧등마다/ 그날 쓰러져 간 젊음 같은 꽃사태가/ 맺혔던 한이 터지듯 여울여울 붉었네// 그렇듯 너희는 지고 욕처럼 남은 목숨/ 지친 가슴 위엔 하늘이 무거운데/ 연련히 꿈도 설워라 물이 드는 이 산하’.(이영도의 ‘진달래’) 4월 유채꽃은 진노랑 비장함이다. 1980년대가 저물 때 안치환은 “어둠살 뚫고 피어나 검붉은 저녁 햇살에 꽃잎 시들었어도 살 흐르는 세월에 그 향기 더욱 진하다”고 노래했다. 처연하게 툭, 떨어지는 붉은 동백은 또 어떤가. 그래서 화산섬 제주의 봄은, 봄꽃은 화사함만은 아니다.

▲며칠 전 어느 관공서 담장에 핀 백목련에 검버섯이 온통 가득했다. 는개 속에서 더욱 소담스러웠던 모습은 온데간데없다. 봄비 몇 번 스치고, 봄바람 몇 차례에 내년 봄을 기약하고 말았다.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봄흥이 일었는데…. 요즘엔 꽃비가 한창이다. 연분홍 자태로 봄을 홀렸던 왕벚꽃들이다. 발 동동 구르게 더디 핀 봄꽃들이, 떨어질 땐 금방이다. 이렇게 지날 봄을 매번 그리워한다.



신정익 논설위원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