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정치판에도 둘째 가라면 서러울 저격수들이 많다. 지난 4·11총선에서 고배를 마신 홍준표 전 새누리당 대표도 그 중 한 사람이다. 국민의 정부 시절 ‘DJ 저격수’로 명성을 날렸다. 김대중 당시 대통령과 그의 아들들의 비리 의혹을 잇따라 폭로하는 데 앞장섰다. 그는 지난해 모 저축은행으로부터 불법자금을 받았다는 의혹을 받았다. 그러자 설을 제기한 야당 의원을 향해 “스나이퍼는 원샷 원킬이다. 여기저기 잘못 쏘다 노출되면 자신이 죽는다”고 저격수답게 응사했다.
▲지난해 개봉돼 화제를 모았던 영화 ‘고지전’에도 미모의 저격수가 눈길을 끌었다. 여배우 김옥빈이 북한군 저격수인 차태경으로 열연했다. 서늘한 표정의 그녀가 한 발씩 쏠 때마다 국군 악어중대의 병사들은 한 명씩 쓰러졌다. 전쟁에서 저격수의 중요성은 기록으로 말해준다.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적군 1명을 제거하는 데 쓰인 탄약은 7000발, 제2차 대전에서는 2만5000발에 달했다. 그런데 저격수들은 평균 1.7발이면 해냈다.
▲연말 대선(大選·12월 19일)이 8개월 앞으로 다가왔다. 여느 대선처럼 올해도 많은 저격수들이 뜨고 질 것이다. 상대진영 대선 주자에게 치명상을 입히면 1등 저격수로 남는다. 공신록(功臣錄)에도 이름이 올라 2, 3년 호사를 누린다. 그러나 저격에 실패하면 자기가 되레 당한다. 다시는 총을 잡을 수 없는 신세로 전락할지도 모른다. 자신의 모든 것을 걸어야 한다는 말이다. “생각 없이 여기 저기 쏴대는 건 스나이퍼가 아니라 총기 난사범일 뿐”이라는 진중권 교수의 충고가 그럴듯하다.
신정익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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