빚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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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영조 즉위 원년인 1724년 승정원일기에 전하는 얘기다. 지중추부사 윤취상(尹就商)이 상소를 통해 채권자가 채무자를 얼마나 가혹하게 다루는지 고발했다. 채무자가 이미 죽었으되 빚쟁이가 세력이 있는 사람이라면 채무자의 친족에게서 대신 받아내는 폐단이 있다고 했다. 또 채무자가 살아있더라도 혹 가난하여 떠돌아다니면 살림살이가 조금 나은 그의 친족을 붙잡아다 놓고는 채무자가 나타날 것이라고 하면서 가둬 놓고 마구 받아 낸다고도 말했다. 해서 윤취상은 “지금부터는 공채(公債)나 사채(私債)를 막론하고 채무자가 이미 죽었다면 친부자(親父子) 외에는 절대로 불법으로 마구 받아 내지 말도록 해야 한다”고 요청했다. 280여 년이 지난 요즘도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정부가 불법 사금융을 뿌리뽑겠다고 나섰다. 정중하게 얘기해서 불법 사금융이지, 실상은 악덕 고리대금업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불법 고금리, 폭행·협박 등 불법 채권추심 등을 일삼기 때문이다. 주기적으로 단속을 하지만 기대만큼 효과는 없다. 오히려 독버섯처럼 암약하면서 서민들의 등골을 빼먹고 있다. 당국이 이번에는 정말 칼을 잘 벼렸는지 지켜볼 일이다.

▲동서고금(東西古今)을 막론하고 빚을 진 이들의 삶은 피폐하기 이를 데 없다. 러시아의 대문호 도스토예프스키는 임신 중인 아내의 패물까지 도박으로 날리고 빚쟁이들에게 쫓겼다. 그는 독일로 도망가서도 룰렛 도박을 일삼아 빚에 허덕였다고 한다. ‘타이티의 여인’을 그린 폴 고갱 역시 빚쟁이들을 피해 타이티로 숨었다. 주식중개인으로 일하다가 거액의 빚을 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혹자는 ‘빚지는 일은 노예생활의 시작’이라고 말했다.

▲불법 사금융신고센터를 운영한지 10일 가량 지났다. 전국적으로 수천 건의 신고가 접수됐다. 그런데 드러난 사채업자들만 처벌하면 끝일까. 그들 뒤에 있는 ‘큰손’이 문제다. ‘바지사장’들만 솎아내선 효과가 없다. 진짜 돈의 주인〔錢主〕을 찾아 그 추악한 실체를 밝혀야 한다는 말이다. 그들이 정말 무서운 ‘빚쟁이’들이다.



신정익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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