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중훈 회장의 ‘창조적 경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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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발연대의 주역을 담당했던 큰 별 하나가 떨어졌다. 한진그룹 조중훈(趙重勳) 명예회장이 지난달 17일 별세하면서 재계에는 창업 1세대 경영시대가 막을 내리고 있다.

창업세대들이 한국을 대표하는 기업들을 잇달아 일으켜 세우면서 ‘한강의 기적’을 일궈냈지만 이제 대부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있다.

이들 창업세대는 1960~1970년대 개발경제시대에 맨주먹으로 “잘 살아보자”는 구호를 외치며 한국경제를 일구는 데 앞장선 인물들이다. 그들은 광복과 한국전쟁 등을 거치면서 쌀가게와 자동차 수리점(현대), 정미소와 설탕 판매(삼성), 포목점과 치약(LG), 직물장사(SK) 등 작은 점포에서 시작해 대그룹을 이뤘다. 그러나 한국 경제의 산증인들이었던 창업세대들은 이제 대부분 타계했다.

도전과 모험이 기업가 정신의 요체라고 한다면, 수송보국의 열정으로 오대양 육대주를 무대로 삼았던 조중훈 회장이야말로 그 전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45년 11월 1일, 25세의 한 젊은이가 인천 해안동의 한 모퉁이에서 한진상사라는 작은 운송회사의 문을 열었을 때 그것이 세계를 무대로 육.해.공을 아우르는 운수물류 종합그룹인 한진그룹으로 성장할 것이라고 짐작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한진상사는 간판을 내건 지 57년 만에 계열사 21개, 총매출액 15조2000억원에 3만3500명의 종업원을 거느린 한진그룹의 모체가 됐다.

조 회장은 1969년 3월 공기업이던 대한항공공사를 인수해 세계 10대 항공사, 화물적재량 세계 2위를 자랑하는 대한항공으로 키워냈다. 1977년 5월에는 한진해운을 설립해 세계 4대 선사로 만들었다. 트럭 한 대에서 출발한 사업이 바다를 가르고 하늘로 뻗어나간 반세기의 족적은 일일이 기록을 남기기에도 벅찬 긴 드라마와도 같다.

트럭 한 대로 세계적인 기업을 일구어낸 도전정신, 포탄이 쏟아지는 베트남 정글 속에서 직접 물자 수송을 지휘하느라 동분서주하던 고인의 용기를 우리는 과연 얼마나 갖고 있는가. 기업가 정신이 날로 쇠미해지고 있는 나약한 시대이기에 세상을 떠난 고인을 더욱 애절하게 회고하게 된다.

특히 제주와 각별한 인연을 맺었던 조중훈 회장은 제주의 교통난을 획기적으로 개선하는 데 커다란 기여를 했을 뿐만 아니라 개척정신으로 도내 황무지를 개간해 대단위 기업목장을 조성하는 등 제주지역사회 발전에 견인차 역할을 했다.

고인은 제주노선에 항공기를 집중적으로 투입했으며 제주KAL호텔을 신축하고 제주민속촌을 설립하여 제주관광산업 활성화에 큰 계기를 마련하였다.

제동목장 외곽지에 비행훈련원을 조성하고 정석비행장을 완공해 국제 수준의 민간공항으로 발전시켰다. 또한 정석교육상과 정석장학금을 설립, 도내 우수 학생과 교사들을 지원하는 등 제주교육 발전에도 기여했다.

한진그룹은 고인의 ‘제주 사랑’ 유지를 받들고자 북제주군 조천읍 교래리 소재 제동목장에서 채취한 흙으로 안장했다고 한다. 고인은 월정사 현해 스님의 극락왕생을 축원하는 독경을 들으면서, 경기도 용인시 기흥읍 하갈리 선영에서 자신이 생전에 정열을 쏟아 일군 제동목장의 흙과 함께 영면에 들어갔다.

이 나라 경제개발 초기에 남긴 조중훈 회장의 공적은 한국 경영사(經營史)에 길이 빛날 것이고 그가 남긴 발자취는 후대들의 귀감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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