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여행 수첩 - 홍택균 제주경찰서 방범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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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계곡의 청량감 찾아 청학동으로 오세요

굽이굽이 돌고 또 돌고 오르고 또 올라 산과 계곡이 어우러진 절경에 숨을 죽여가며 조심스레 계곡 아래로 내려가 산을 올려다보면 “야!~”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얼마나 높고 얼마나 깊은지 알 길은 없지만 신선이 바둑을 두고 천사가 멱을 감는 한폭의 동양화가 여기 아닌가.

아내는 환호하고 애들은 바지가 발목에 걸린 채 물로 뛰어든다.
같이 뛰어들고 싶지만 아내의 눈길에 쑥스러워 바위에 걸터앉으면 찰랑이며 흐르는 물이 너무 맑아 발을 담그기가 두렵고, 어깨에 기대오는 아내의 손에는 한 권의 시집이 들려 있다.

태양은 서쪽 산에 걸리기 시작하고 물장구에 지친 애들이 텐트 속에서 부산떠는데 아내는 저녁을 준비하느라 버너에 냄비를 올려놓는다.

매일 먹는 저녁이지만 어둠이 깔리는 파란 하늘 밑에서 파란 잔디를 깔고 냄비 하나에 네 식구가 둘러앉아 수저를 부딪혀가며 먹는 저녁식사는, 반찬이 없어도 달콤한 행복을 먹기에 황제의 산해진미 수라상과 비교할 수 없다.

어둠이 내리고 밤벌레 울음소리도 지친 듯 스러져 갈 때 쯤이면 좁은 텐트 속 희미한 랜턴 아래는 평화가 깃들고, 깰까 두려워 살그머니 빠져나온 가장(家長)은 담배를 꺼내 물고 일상사에 찌든 심신을 달래며 밤하늘의 별을 쳐다보다가 문득 ‘사무실에는 별일 없을까’라는 노파심에 빠져드는데 무심한 계곡의 밤은 깊어만 간다.

계곡을 떠나 산으로 더 올라가 길이 끝나는 곳에 마을이 있다.
하늘과 가장 가까운 하늘 아래 첫 동네 청학동.

널리 알려진 덕분(?)에 동네 사람보다 방문객이 더 많고, 살림집보다 유학당이 더 많아 어린 학생들이 예절교육을 받느라 북적대고 있다.

이곳에 와보고 싶다고 노래 부르던 아내가 기대했던 댕기머리 총각이 안 보여 실망하면서도 수려한 산세와 계곡의 청량감에 들뜬 기분을 감추지 못하는 모습이 보기가 좋고, 선비 글 읽는 소리는 없고 관광객을 부르는 호객소리가 눈살을 찌푸리게 하지만 그래도 “먹고 살아야 하고 애들 공부도 시켜야 하잖아요”라는 상품가게 아줌마의 넋두리에 공감을 하며 청학동을 뒤로하고 다시 찌든 도심 속으로 내려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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