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J 오빠가 그리운 추억 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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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 중반 대학을 다닌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번 쯤 가봤던 공간.
30~40대 직장인들 중에는 아직도 제주시 중앙로 동문시장 입구에 있는 ‘소금창고’를 기억하는 이들이 많다.

‘아직도 소금창고가 남아 있어요?’
무심코 걷다가는 그냥 지나칠 만큼 소금창구의 입구는 여전히 비좁고 외부 간판도 없이 옛날 모습 그대로다.

▲'이방인' 도내 첫 생음악 카페

1988년 아내와 함께 문을 열어 15년째 추억의 공간을 운영해오고 있는 김환신씨(59)는 어느덧 머리가 하얗게 샜다.

1974년 제주KAL호텔 오픈 멤버로 제주에 내려왔다가 녹내장 수술 이후 직장을 그만두고 신제주에 ‘이방인’이란 10여 평 공간의 소주 카페를 열었던 때가 1984년.

중.고교 교사와 문학도, 신문.방송기자를 비롯해 근처 직장인들의 인기 장소였던 그곳은 유일하게 통기타를 들려주는 도내 제1호 생음악 카페였다.

그후 4년 만에 중앙로에 ‘소금창고’를 내고 함께 운영하던 ‘이방인’은 두 자녀가 자라면서 1993년께 정리했다.

도내 웬만한 소주방이나 민속주점에서 나오는 ‘소주 칵테일’과 ‘두부김치’는 그때 그가 처음 선보인 원조 메뉴다.

“이방인의 손님들이 소금창고로 몰려왔어요. 제가 가게를 끌어간다기보다 손님들이 알아서 만들어갈 정도로 너무 좋은 사람들을 만났던 것 같아요.”

▲ 소주 한잔에 시름 달래던 1980년대

당시 중앙로 근처에 있던 중앙성당(현 천주교 제주교구)은 운동권의 본거지로 각종 집회로 인해 시끌시끌하던 곳.

많은 학생들이 소금창고에 가방을 던져놓고 데모를 하고 와선 소주 한잔에 시국을 논하고 세상의 시름을 달랬다.

‘김민기.양희은’의 노래로 시작된 세대들은 이후 ‘정태춘.박은옥’을 거쳐 ‘김광석.안치환’의 세대로 이어졌다.

“손님의 눈빛만 보면 무슨 노래를 틀어야 하는지 알 정도지요. 사실 이곳에 오는 손님들은 시대의식 때문인지 별다른 주문 곡 없이 대부분 민중가요를 들어요.”

지금도 선배를 통해 알음 알음으로 찾아온 대학생에서 졸업한 20대 후반부터 30대 초반까지가 단골이지만 여전히 안치환의 ‘자유’와 김광석의 ‘이등병의 편지’가 인기곡이다.

▲ 19년 된 특허 메뉴 '소주정식'

이곳을 거쳐간 아르바트생도 42명. 1기생부터 42기까지 기수를 붙여놓고 결혼 날짜까지 꼼꼼하게 챙겨놓은 김씨 부부는 “이들 결혼에 참석하는 것도 큰 즐거움”이라고 말했다.

‘카린스(희석음료)’에 소주를 섞어 손님이 직접 만들어 먹는 일명 ‘소주칵테일’에 두부김치가 곁들여진 9500원짜리 ‘소주정식’은 여전히 이곳의 특허 메뉴다.

“이 상품 하나로 19년째 이어오고 있는 셈이지요. 안주도 옛날 안주 그대로고, 지금도 제일 유명한 게 ‘해물파전’이에요.”
서울 고려대 앞에서 주점을 연 한 고객은 이곳에서 ‘소주정식’에 대한 힌트를 얻고 가서는 ‘대히트’를 쳤다고 김씨는 귀띔했다.

▲ 테이블마다 정겨운 낙서 '가득'

‘사랑해 정민아!’, ‘○○오빠, 와~ 잘 생겼다’, ‘○○○야, 군대 잘 다녀와. 1992. 2.14’.

지금도 테이블마다 손님들이 남겨놓은 방문 기록과 날짜는 지워지지 않은 채 있다.

한턱 낸다며 간간이 직장 후배들을 끌고 와서는 옛 추억의 무용담을 잔뜩 늘어놓는 선배들도 여전하다.

“어제도 10년 만에 찾아온 손님과 옛날 얘기를 나눴어요. 예전 생각을 하고 온 분들은 아직도 CD보다는 ‘지지직’거리는 LP판(일명 백판)을 더 찾지요.”

김씨의 시력에 맞춘 어두 침침한 소금창고의 조명빛은 그동안 숱한 결혼 커플을 만들어냈다.

그리고 ‘소금창고’는 뜨거운 사랑을 나누는 젊은 연인들의 데이트 공간으로, 젊음을 불살랐던 이들의 추억의 장소로 여전히 사랑받고 있다.

“소금창고를 기억하고 찾아오는 이들 때문에 섣불리 관둘 생각을 못 하겠어요. 아마 이곳을 끝까지 지켜가야 할 것 같아요.”

소금창고 (753)2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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