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빛 노을에 비친 나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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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차귀도 낙조 보며 한 해 회고 회환·아쉬움 털고 희망 기약

제주도에서 가장 서쪽에 위치한 차귀도. 도내 무인도 중 가장 큰 섬.
성산 일출봉에서 떠오른 해가 부지런히 달려와 차귀도 앞바다에서 서서히 지기 시작한다.

하늘, 바다 모두 황금빛으로 물들어가고 차귀도의 검은 그림자는 더욱 선명해진다. 황금빛 하늘로 날아오른 갈매기 한 쌍이 춤을 춘다. 칼날같이 매서운 겨울 바닷바람이 숨을 멎게 한다.

차귀도의 노을과 함께 2002년 임오년 한 해가 서서히 저물고 있다. 다사다난했던 한 해의 끝자락을 털고 2003년 계미년 새해를 준비하기 위해 불덩이는 검푸른 심연으로 깊이깊이 빠져든다.

차귀도로 가는 낚싯배가 즐비한 한경면 고산리 자구내 포구.
노을을 보기 가장 좋은 목은 말린 한치와 갑오징어를 파는 아낙네들이 10년 전부터 차지해 왔다. 한치 10마리에 1만원. 한치를 먹으며 자구내 포구와 이어진 1.5㎞의 엉알 산책로를 걷다 보니 해발 77m의 수월봉이 나왔다.

고산리 주민들은 수월봉에서 보는 차귀도 일몰을 백미로 꼽는다.
녹고와 수월 남매의 애절한 전설이 깃든 수월봉만큼이나 차귀도는 우여곡절이 많은 섬이다.

전설에 따르면 고려 16대 예종 임금 당시 제주에서 중국(송나라)을 넘볼 인재가 나오리라는 관측이 떠돌아 중국은 이를 막기 위해 호종단이라는 사람을 제주로 보냈다. 호종단은 제주에 있는 13혈(穴)을 찾아 맥을 끊고 돌아가던 중 날쌘 매로 변신한 한라산 수호신이 일으킨 폭풍으로 차귀도 앞바다에서 배가 침몰해 돌아가지 못했다.

호종단의 횡포에 복수한 셈. 이에 차귀도(遮歸島, 이전에는 죽도)란 이름을 얻게 됐다.

오랜 세월이 지난 1911년 고산리 강지용씨가 가족을 데리고 차귀도에 처음 들어갔다. 이후 차귀도에는 8가구가 정착했고 거친 땅은 비옥한 옥토가 되었다.

특히 열무가 잘 자라 모슬포에 있던 육군 제1훈련소에 부식으로 납품되기도 했다.

그러나 1974년 추자도 무장간첩사건 이후 정부는 차귀도가 간첩의 은거.접선지가 될 수 있다 하여 1978년 주민 강제 철거명령을 내렸고 차귀도는 주인을 잃은 채 억새숲속에서 고요히 침묵하고 있다.

1990년대 초 고산리 주민들은 사람이 없는 차귀도를 생명력 있는 섬으로 만들기 위해 토끼와 염소를 방사했는데 이로 인해 웃음 터질 사연도 생겼다.

특수부대 요원들이 10일간 금식(禁食)훈련을 받기 위해 차귀도를 몇 해간 찾았으나 방사된 토끼와 염소로 인해 오히려 포식하고 돌아갔다는 일화가 우스갯소리로 전해지고 있다.

각설하고, 숱한 사연과 월드컵 열기로 온 국민이 들떴던 2002년 한 해가 막을 내리고 있다.

한장 한장 찢겨 나가 마지막 남은 달력 한 장이 유종의 미를 거둘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깨닫게 한다.

황금빛으로 온 세상을 물들인 차귀도의 노을은 올 한 해의 회한과 아쉬움을 말끔히 털어낼 것을 재촉한다.

차귀도에서 해가 사라졌다. 그러나 빛의 잔영으로 인해 어둠이 온 세상을 지배하지는 못했다. 새해에는 진정한 ‘나’의 모습을 찾으라고 해는 우리에게 말없는 메시지를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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