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미나무와 제주포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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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정옥 서울과학종합대학원 지속경영연구원장/ 논설위원
마당가에 장미나무를 심었다. 장미꽃을 본 적은 많았으나 실제로 그 나무와 뿌리를 만져보기는 처음이다. 한 두 송이의 꽃을 받치고 있는 장미의 밑동과 뿌리가 그렇게 두텁고 무성한 게 놀라웠다. 한 그루 장미를 심기 위해서는 삽으로 땅을 깊고도 넓게 파야만 했다. 열 그루를 심는 데 한 나절이 걸렸다. 역시 꽃 중의 여왕인 장미다운 요구다. 사실 장미는 관목성 화목(花木)으로서 강희안의 양화소록에서는 가우(佳友), 즉 아름다운 벗이라 불린다. 어쩌면 마음에 드는 사람에게 장미꽃을 선사하는 것도 그 뜻과 무관치 않으리라.

장미꽃을 바라보며 제주포럼을 생각한다. 요사이 사고의 대부분이 여기에 머물러 있는 까닭이다. 제주포럼이 어언 10년을 넘어섰다. 2001년도에 시작되어 격년제로 치러져 오다, 올해부터는 연례행사로 바뀌었다. ‘제주포럼을 아시아의 다보스포럼으로 발전시키겠다’는 제주도정의 의지다. 이 다보스포럼에 꽂혀 제주포럼에 빠진 조직이 있으니, 바로 필자가 몸담고 있는 학교(aSSIST)다. 제5회 때 처음으로 150여명의 CEO를 참가시켜 제주학습의 가능성을 타진한 후, 6회 때는 약 750명을 등록시켰다. 유료 참가를 도입함으로써 다보스처럼 수익성 있는 포럼으로 변모시켜 보려는 실험적 도전이었다.

이를 통해 숫자적인 제주포럼 규모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400~500명을 맴돌던 참가자 수가 5회 때 650명, 6회 때는 1880명으로 늘었다. 이번 7회에는 2000명을 내다본다. 이미 규모 측면에서는 국제포럼다운 면모를 갖추었다. 하지만 돈 버는 일은 쉽지 않아서 6회째 2억원의 유료참가비를 기여한 aSSIST는 2억원 넘는 손실을 입었다. 중국인 CEO 200여 명을 끌어들이려는 과정에서 발생한 비용이 커서다. 아직도 외국인들은 참가비를 내려는 경우가 극히 적다. 이게 다보스로 가려는 제주포럼의 최대 과제다. 국내 CEO들도 기꺼이 참가비를 내기보다 간곡한 요청(푸쉬 마케팅)과 가격할인에 의해 끌려오는 형국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실험은 계속되어야 하리라 본다. 제주포럼이 정녕 제주에 유익하고 지속가능하게 되려면 자생력을 갖춰야 하기 때문이다. 어쩌면 이 문제는 그동안 제기돼온 ‘제주포럼을 왜 하는가?’ 하는 컨벤션의 본질과도 연관된다. 일반적으로 컨벤션은 MICE(Meeting, Incentive, Convention, Exhibition)의 이름으로 지식과 정보, 관계, 레저 등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모일 때 파생되는 게 목적이다. 컨벤션을 통해 장소가 유명해지고, 지역경제가 활성화되며, 지역주민의 자부심이 높아지는 컨벤션효과를 겨냥하는 거다. 여수 엑스포는 물론 부산, 대구, 인천 등이 컨벤션센터를 통해 스타컨벤션에 사활을 거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제주포럼은 한국 MICE산업을 대표하는 주자가 명실공히 제주임을 인증하는 메달이 되어야 한다.

그런데 컨벤션이 수익성 있는 행사로 뿌리 내리고 꽃 피우기까지 사람과 시간이 필요하다. 1971년 하버드대 경영학 교수 클라우스 슈밥(Klaus Schwab)이 ‘유럽인 경영심포지엄’을 출범시킨 후 오늘날의 다보스포럼(WEF)으로 만들기까지 40년이 걸렸다. 그 과정에서 참석 대상, 운영 형태, 조직 구성, 의제 개발 등이 계속 달라져 왔다. 이러한 다보스의 발전과정을 벤치마킹하면서 제주포럼도 변신을 거듭해야 하리라 본다. 지난 10년이 ‘평화’의 꽃을 피우기 위한 시간이었다면, 향후 10년은 ‘번영’의 꽃을 피우는 시기가 돼야 할 것이다.

다만 그 10년 후, 평화와 번영의 꽃밭이 조성되기까지 끊임없이 물과 거름을 주어야 하리라. 이를 위해 제주도가 조례를 제정해 행·재정적 지원의 토대를 만든 것은 시의적절한 결정이다. 이제는 황무지가 장미정원이 되듯이 7회의 제주포럼이 아름답게 성취되기를, 모든 참가자와 제주도민들이 각자의 빛깔과 향기에 알맞은 가우로 어우러지기를 꿈꾸며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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