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시림의 방랑-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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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포수와 야수
서닌이 나직하게 중얼거렸다. 처음에는 무슨 소리인지 알 수 없었으나 그 소리는 곧 범의 울음소리로 변했다. 수컷의 유인에 응하는 암범의 사랑 노래였다.


서닌은 그 소리를 어느 길야크족의 사냥꾼에게서 배웠다. 길야크족도 중국 동북부의 원시림에 살고 있는 소수 민족이었으나 훌륭한 사냥꾼으로 알려져 있었다.


길야크족의 사냥꾼들은 짐승들의 울음소리를 잘 흉내냈으며 그 소리로 짐승들을 유인하여 사냥했다.


그때 서닌이 낸 암범 울음소리의 흉내가 제대로 된 것인지는 의문이었으나, 어쨌든 수범이 다가오고 있었다. 성에 흥분한 짐승들은 분별이 없어져 아무 유인에도 쉽게 떨어지는 법이었다.


수범의 포효는 이젠 으르렁 소리로 변해 점점 가까이 오고 있었다. 눈가루의 장막 속이었기 때문에 범의 모습은 잘 보이지 않았으나 그래도 하얀 눈 속에 검고 붉은 줄무늬가 어른거리고 있었다.


거리가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30m가 20m로, 다시 15m가 되었다. 그때 범의 으르렁거리는 소리가 딱 멈췄다. 수범이 가짜 울음소리를 간파했다. 그러나 속은 것을 안 수범은 돌아가지 않았다. 감히 삼림의 왕을 속인 자들에 대한 분노가 폭발했다.


범이 도약했다. 서닌이 총을 발사했다. 공중에서 어른거리는 검은 무늬를 겨냥하고 방아쇠를 당겼다.


총탄에 명중된 듯 털석하는 소리와 함께 눈가루가 날려 올라갔다. 그러나 그것으로 죽을 범이 아니었다.


범은 다시 눈가루를 날리면서 도약했다. 서닌이 다시 총을 쏘았는데 그건 그가 총을 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였다.


서닌은 그때 어깨에 충격을 느꼈다. 범의 앞발이 서닌이 쥐고 있던 총신을 후려쳤고 서닌은 그 충격으로 총을 떨어뜨렸다.


서닌은 그 순간 아찔했다. 그는 싸움에서 자기가 졌다고 체념했는데 그렇지 않았다. 노라니의 권총이 바로 그때 발사되었다. 노라니는 서닌의 옆에 딱 붙어 침착하게 상황을 살피고 있다가 권총을 발사했다. 권총은 연달아 세 방이 발사되었고 그것으로 사냥이 끝났다.


“잡았어. 내가 범을 죽였어.”


노라니가 고함을 질렸다. 놀라운 여인이었다. 그녀는 타고날 때부터 강한 살륙의 본능을 지니고 있었던 것 같았다.


서닌은 마지막 숨을 몰아쉬고 있는 범을 내려다봤다.


불쌍한 수범이었다. 암컷을 차지하겠다고 함부로 날뛰다가 죽은 성의 희생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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