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시림의 방랑자(28)
원시림의 방랑자(28)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페이스북
  • 제주의뉴스
  • 제주여행
  • 네이버포스트
  • 카카오채널

명포수와 야수
일행은 모두 여섯이었다. 고리드족의 촌장과 젊은 약혼자들, 신랑감을 데리고 온 러시아 거주 고리드족 안내인, 그리고 러시아인 남녀 간첩 두 명이었다.


그들은 그날 밤에 출발했다. 달도 없고 별도 없는 어둠이었다. 촌장이 앞에 섰는데 그는 손바닥에 하얀 칠을 하고 그것을 폈다 오므렸다 하면서 뒤따라 오는 사람들에게 신호를 보냈다.


그 원시림 안에도 길이 있었다. 북만주와 러시아를 계절따라 왔다갔다 하는 사슴떼들이 만들어 놓은 길이었다.


수백, 수천 마리의 사슴떼들이 오랜 세월 동안 짓밟아 만든 짐승길이었다.


그러나 덮어놓고 그 길만을 따라가면 안 된다. 일본군들이 만들어 놓은 초소들이 길가에 있었다.


악착 같은 일본군들은 한겨울에도 초소를 지키고 있었고 초소들 사이를 순찰병들이 오가고 있었다.


촌장은 그 초소들이 어디쯤에 있는지를 알고 있었고 순찰병들이 돌아다니는 시간도 알고 있었다. 촌장은 초소를 멀리 돌아갔다.


어둠 속에서 손으로 더듬어가면서 한 발 한 발 걸어갔다.


촌장 일행은 다음날 새벽 고리드족 사냥꾼들이 만들어 놓은 움막에 도착했다. 가장 북쪽에 있는 움막이었으며 거기서는 멀리 헤이룽장(黑龍江)이 보였다. 거기서 강까지는 2000여 m, 강 너비는 1000m쯤 되었다.


거기까지는 고리드족 촌장이 안내를 했으나 다음부터는 서닌이 지휘를 했다.


서닌은 망원경으로 상황을 살펴봤는데 일본군의 경비는 빈틈이 없었다.


100m 간격으로 초소들이 있었고 20m 간격으로 다고쓰보(문어 항아리)가 있었다. 다고쓰보란 두 명의 경비병들이 들어가는 움막이었다.


일본군은 그런 경비를 하고 있었는데도 특별순찰대를 출동시키고 있었다. 장교가 지휘하고 대원들이 열서너 명쯤 되는 순찰대였다.


그들은 정기적으로 돌아다니고 있는 순찰대와 별도로 움직이고 있었는데 그들은 각 초소를 감독하고 다고쓰보까지도 살피고 있었다.


초소와 다고쓰보에 근무하는 병사들은 그 특별순찰대가 오면 모두 밖으로 나와 부동 자세로 경례를 하고 상황보고를 했다.


“저거야. 저 특별순찰대야.”


그들은 순찰대의 뒤를 따라가기로 했다.


순찰대의 뒤에는 공백이 있었다. 아무도 순찰대를 의심하지 않았고 순찰대는 자기들의 뒤를 감시하는 일을 소홀히 하고 있었다.


서닌 일행은 그날 밤 사냥 움막에서 나와 어둠 속에 잠복했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