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디오의 마지막 성지(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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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포수와 야수
다음날 집을 비웠던 마을의 남자들이 다 돌아오자 마을회의가 열렸다.
무슨 의논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없었으나 모두들 긴장하고 있었다.
뭔가 일이 벌어진 것 같았으며 인근에 있는 다른 마을 대표들도 드나들고 있었다.

나중에 안 일이었지만 그때 마을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백인 신부들과 성직자들이 도착하여 선교활동을 하고 있었다. 그곳은 2년 전에 교회가 있었던 곳이었으나 일부 부족들이 교회를 습격하여 불살라버렸다. 성직자들은 겨우 목숨만을 건지고 도망갔으나 교회를 재건하겠다는 집념은 버리지 않고 있었다.

그래서 성직자들은 장마기에 배를 타고 그곳에 다시 왔다. 장마기에는 수로(水路)가 트여 비교적 쉽게 여행을 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인디오의 부족들 사이에 의견 대립이 있었다.

일부 부족들은 백인들을 무조건 쫓아내거나 죽여버려야 된다고 주장했으나 일부 부족들은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없다며 반대했다. 반대한 부족들은 같은 백인이라도 침략자와 신부들은 다르다고 주장하면서 신부들이나 성직자들은 나쁜 짓을 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병든 사람들을 치료해주고 부족민들이 모르는 일들을 가르쳐 주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어느 사회에서도 강경론자와 온건론자가 싸우면 강경론자가 이기는 법이었다. 2년 전에 교회를 불살랐던 리오족과 그 이웃 부족들이 신부들을 쫓아낼 싸움 준비를 하고 있었다. 리오족은 목베기족이었고 식인관습도 있었으며 백인들뿐만 아니라 인디오의 다른 부족들도 공격했다.

그들은 매우 호전적이었기 때문에 다른 부족들의 반감과 경계를 받고 있었다. 번번이 강경파들에게 당한 온건파는 이번에는 힘으로 대항하자는 주장까지 하고 있었다.

대학원생들이 머물고 있던 마을과 인근 마을들은 온건파들이었다. 그들은 열흘 전 동쪽에 있던 습지와 산림에 홍수가 났을 때 동쪽 신부마을에 살던 세만족들과 함께 온 대학원생들이 많은 수재민들을 구조했다는 소식을 듣고 있었다. 신문도 전화도 없는 사회였으나 인디오 오지에도 정보는 빨리 퍼져 나갔다.

마을회의가 열렸고 대학원생들이 교회를 재건하려는 신부와 성직자들을 도와주어야 된다고 주장했고 그들이 머물고 있는 집 주인과 그 부인이 강력히 그 주장을 밀었다. 특히 하룻밤 함께 지낸 부인이 그랬다.

회의에서 결정이 내려졌다. 마을의 일꾼 열 명과 도끼, 괭이를 보내기로 했다. 교회를 돕겠다는 말이었다.
그러나 그들이 그날 밤 성직자들이 있는 곳에 도착했을 무렵에는 강경파들이 성직자들을 공격하고 있었다. 약 서른 명의 목베기족들이 성직자들을 포위하고 활을 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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