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짐승 저런 짐승(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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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포수와 야수
“스님, 큰일 났습니다.”
경내를 살피던 중이 헐떡거리며 들어왔다.
곰이 뒤뜰에서 땅을 파고 있다는 말이었다. 뒤뜰에는 무, 배추 등 야채를 저장하려고 파 놓았던 구덩이가 있었다.

아직 야채는 묻지 않았으나 구덩이는 깊이가 2m나 되었고 곰 한 마리쯤은 편안하게 잠잘 수 있을 정도로 넓었다. 바닥에는 짚을 두껍게 깔아 두었으므로 곰의 겨울잠자리로는 안성맞춤이었다. 남향이었고 북쪽의 담이 바람을 막아줄 수 있었다.

젊은 중들이 막대기를 들고 나서려고 했으나 주지스님이 말렸다. 젊은 중들이 아무리 용감하고 민첩해도 위험했다. 막대기에 맞아 죽을 불곰이 아니었다. 살생을 한다는 것도 중의 본의가 아니었다.

거기다가 그 곰은 스스로 경내에 들어왔다. 초청은 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손님이었다. 절을 찾아온 손님을 어떻게 강제로 내쫓겠는가.
그 곰은 간밤에 추위에 못이겨 통곡을 하고 있었는데 그때 주지는 가엾다는 생각이 들었다.

“곰은 그대로 두라고요. 곰과 함께 지내실 생각이십니까. 언제 우리들을 잡아먹겠다고 덤벼들지 모르는 놈인데….”
“아무리 짐승이라도 그런 짓을 하겠는가.”

주지가 웃었다. 젊은 중들도 며칠 동안 곰이 하는 짓을 살펴보기로 했다. 그놈이 설치면 그때가서 때려죽이기로 했다. 부처님도 그런 못된 놈을 죽이는 것을 허락해 주실 것 같았다.

그런데 아무일이 없었다. 곰은 구덩이를 좀 손질하더니 그 안에 들어간 다음 위쪽을 흙으로 덮어버렸다.
그래도 숨구멍을 남겨놓았던지 곰은 구덩이 안에서 조용하게 있었다. 벌써 잠이 든지도 몰랐다.

법당에 뛰어들어온 사슴 새끼도 나가지 않았다. 법당 한 구석에서 중들이 갖다준 야채를 맛있게 먹으면서 얌전하게 웅크리고 있더니 밤이 되니까 잠을 자고 있었다. 법당의 문을 열어놓아도 나가지 않았다. 아예 법당 안에서 겨울을 보낼 생각인 것 같았다.

곰이 구덩이에 들어간 지 나흘째 되는 날 주지스님은 구덩이 옆에 가봤다. 구덩이 안에서 바스락 소리가 났으나 이내 조용해졌다.
곰은 겨울잠을 자도 완전히 정신을 잃은 것이 아니고 반쯤 깨어있다는 말이 있었다. 외적으로부터 위협을 받으면 언제든지 일어나 싸운다는 말이 있었다.

그 곰은 좀 경계를 했으나 밖으로 뛰어나오지 않았다. 놈은 그대로 또 잠이 든 것 같았다.
신기했다. 어떻게 그 구멍 속에서 살아가는 것일까. 물도 한 방울 마시지 않고 아무것도 먹지 않았는데 곰은 살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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