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짐승 저런 짐승(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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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포수와 야수
곰은 주지를 알아봤다. 곰은 주지를 가만히 보고 있었다.

곰의 표정이 부드러워졌다. 살기가 사라졌다. 곰은 구멍 안에서도 바깥 냄새를 느낄 수 있었으며 그때 자기 앞에 서 있던 물체가 몇 달 동안 자기 주위에 있었던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차린 것 같았다.

곰은 상반신만을 밖으로 내민 채 구멍 안에서 나오지 않았다.

“왜 빨리 나오지 않고 저러고 있을까?”
주지가 중얼거렸으나 그 이유가 곧 밝혀졌다. 상반신을 밖으로 내밀었던 곰이 다시 땅굴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잠시 후 다시 밖으로 나왔는데 이번에는 혼자가 아니었다.

곰은 뭔가 강아지만한 물체를 가슴에 안고 있었다. 곰은 소중스럽게 그 물체를 안고 바깥으로 기어나왔다.
까만 색깔의 물체가 꼬무락 꼬무락 움직이고 있었다.

곰의 새끼였다. 그 곰은 구멍 안에서 새끼를 낳아 데리고 나왔다. 새끼는 한 마리뿐이 아니었다. 어미가 새끼 한 마리를 데리고 바깥으로 나오자 다른 새끼 한 마리가 제 발로 구멍 속에서 기어나왔다.

“저런 저런.”
주지스님이 손뼉을 쳤다. 위대한 탄생이었으며 창조였다.

그러나 어미곰은 몰라보게 변했다. 기름기가 번지르르했던 그 몸이 반쪽이 되어 있었다. 겨울 동안 몸 안에 있던 지방을 소비하면서 살았던 곰이었다.
곰은 비틀거렸다. 몸의 중심을 잘 잡지 못했다. 오히려 강아지만한 새끼들이 또박 또박 걸어가고 있었다. 새끼들은 이미 눈이 보이는 것 같았으며 호기심에 찬 눈으로 주위를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그런데 어미보다 앞선 새끼들은 하필이면 주지가 서 있는 곳으로 걸어왔다. 새끼들은 주지가 있는 곳 바로 옆을 지나갔으나 어미는 말리지 않았다. 어미는 옆을 지나가면서 주지스님을 봤으나 적의나 경계심이 없었다.
곰과 그 새끼들은 그대로 주지스님 옆을 지나 산사에서 떠났다.

겨울잠에서 깨어난 곰은 맨 먼저 물을 마신다고 알려졌는데 그 곰과 새끼들도 천천히 계곡으로 내려가고 있었다. 계곡의 얼음은 벌써 녹아 물이 졸졸 흐르고 있었다.

산사 주변은 이미 푸른색으로 변하고 있었다. 두껍게 쌓인 마른 풀 안에서 새싹들이 돋아나오고 있었고 나뭇잎들도 푸른색으로 변하고 있었다.

그런데 자연은 언제나 그렇게 평화로운 것만이 아니었다. 첩첩산골에 봄이 오자 또 일이 벌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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