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짐승 저런 짐승(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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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포수와 야수
범은 산날을 타고 돌아다니면서 사냥을 했는데 그 시력이 뛰어나 10리나 떨어진 계곡에서 도망가는 토끼도 놓치지 않았다.

그러나 범이 발견할 수 있는 것은 뛰어다니는 토끼이지, 가만히 숨어 있는 토끼가 아니었다.

범도 죽은 듯이 움직이지 않는 동물은 쉽게 잡아내지 못했다. 짐승들은 그걸 알고 있었다. 그래서 범이 나타나면 모두들 조용하게 숨어 움직이지 않았다. 그게 무서운 살육자를 피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그런데 죽은 불곰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불곰은 사냥을 하느라고 돌아다니면서 마구 설쳤다.

그 불곰은 몸무게가 300㎏이나 되었으며 범보다도 더 무거웠다. 어깨에 쌀가마니만한 근육덩이가 붙어 있어 힘도 범보다 강했다.
그래서 불곰은 범이 나타난 것을 알고도 다른 짐승들처럼 엎드려 기지 않았다.‘해 볼테면 해 보라’는 태도였다. 범과 곰의 싸움은 초반전에 이미 판가름이 났다. 범은 곰보다 훨씬 빨랐고 기민했다.

범은 크게 도약하면서 앞발로 곰의 대가리를 후려쳤는데 그 일격에 곰의 한쪽 눈이 찢겨졌다. 곰은 그래도 도망가지 않고 반격을 했다. 어떻게 해서라도 범을 움켜 잡을 작전이였는데 범은 그런 접근전을 피했다. 범은 붙었다 떨어졌다 하면서 공격을 되풀이했고 그때마다 곰은 상처를 입었다. 곰은 결국 핏덩이가 되어 죽었다.

범도 상처를 입은 듯 피를 흘리고 있었으나 큰 상처는 아닌 것 같았다. 범은 그렇게 힘들인 사냥을 해놓고도 곰의 사체를 뜯지 않았다. 범은 곰의 대장 일부와 허벅살을 몇 점 먹고는 가 버렸다. 그 싸움은 처음부터 먹이를 얻기 위한 사냥이 아니고 자기 영토를 지키려는 싸움이었다.
범과 곰의 싸움에서 어부지리를 얻은 것은 숯꾼 영감이었다. 곰의 껍질은 걸레처럼 찢겨져 가치가 없었으나 쓸개가 그대로 있었다. 쓸개는 웅담의 재료가 되었으며 비싼 값으로 팔 수 있었다.

숯꾼 영감은 주지에게 범의 흥분이 가라앉을 때까지 토굴집에서 며칠 쉬었다가 가라고 충고했으나 주지 스님은 다음날 새벽에 떠났다. 주지 스님은 그날 오후 저쪽 산날을 타고 있는 범을 발견했다. 범은 길다란 꼬리를 늘어뜨리고 천천히 걸어가고 있었다.

범은 주지 스님을 발견하고 가만히 내려다보고 있었다. 주지 스님은 두려움보다도 반갑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지 스님은 ‘어험’하고 헛기침을 했다. 그리고 먼 산을 보면서 걸어갔다. 범도 먼 산을 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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