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루괴담(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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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포수와 야수
피리영감은 흥분했다. 주머니에는 생전 만져 보지도 못했던 금화가 열여덟 개나 들어 있었다. 그만한 돈이면 이젠 일을 하지 않아도 평생 편안하게 살 수 있었다. 몇 년 전에 알게 된 젊은 계집도 집안으로 불러 들일 수 있었다. 별당을 한 채 짓고 거기서 살게 하면 늙은 마누라도 별말 없을 것이다.

피리영감은 3, 4일내에 산에서 내려가 장안으로 가기로 했다.

그러나 그동안이 불안했다. 자기에게 금화가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안 된다. 그걸 비밀로 해야만 했다. 그 산중에서 약육강식의 법칙은 짐승들 사이에서만 통하는 것이 아니었다.

피리영감은 불안했다.

피리영감은 심복인 활꾼 정서방 형제를 자기가 기거하는 옆방에서 자도록 했다. 영감은 그들 형제에게만 자기가 큰 돈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알려 주고 경호를 지시했다.

피리영감은 그날밤 금화주머니를 이부자리 안에 넣고 잤다. 권총은 품 속에 넣었다. 피리영감은 잠이 오지 않았다. 옆방에서 술을 마시고 있던 정서방 형제는 잠이 든 것 같았다.

피리영감은 자정이 넘었을 무렵에 겨우 잠이 들었으나 이내 잠에서 깨어났다.

소리가 났다. 피리영감의 귀는 짐승들의 그것처럼 예민했다. 영감은 피리소리에 유인되어 가까이에 오는 노루의 발자국 소리까지도 들을 수 있었다.

발자국 소리였다. 누가 다가오는 것 같았다. 다가오는 자는 소리를 내지 않으려고 했으나 피리영감은 그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영감은 옆방에서 자고 있는 정서방 형제를 깨우려다가 그만 두었다. 그들을 깨우려고 하면 도리어 위험할 것 같았다. 암살자가 정서방 형제가 잠에서 깨어나기 전에 자기를 덮칠지도 몰랐다.

발자국 소리가 아주 가까워졌다. 바로 문 밖인 것 같았다. 피리영감은 권총을 들어올렸다. 그는 방문이 열리는 순간에 총을 쏘기로 했다. 방문은 안에서 고리를 걸어 놓았으니 쉽게 열리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건 잘못된 생각이었다. 상대는 암살자였다. 인간을 전문으로 사냥하는 자였다.

암살자는 조용하게 문 밖에서 오줌을 누었다. 그는 오줌으로 방문을 적셨다. 그리고 젖은 문의 종이를 뜯고 손을 넣어 방고리를 풀었다. 오줌에 젖은 방문도 소리 없이 열렸다.

피리영감은 방 안으로 스며드는 차가운 바람으로 방문이 열렸다는 것을 알았으나 권총을 쏠 틈이 없었다. 암살자의 단검이 그 전에 영감의 가슴을 찔렀다. 그건 치명상이었으나 영감은 고함을 질렀다.

옆방에서 자고 있던 정서방 형제가 뛰어들어 왔으나 그 전에 암살자는 금화가 든 주머니를 들고 도망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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