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산의 포수마을(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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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포수와 야수
산중복에서 산정으로 올라오고 있는 사람들은 키가 6척에 가까운 거구들이었고 자기들의 키보다 훨씬 긴 창을 갖고 있었다. 호벌대임이 틀림없었다.

호벌대는 지방 관아에서 호환(虎患)에 대비하여 두고 있는 범사냥꾼들이었으며 인축을 해치는 범이 나타나면 즉시 출동하여 범을 잡았다. 특별히 선발하여 훈련을 시킨 장정들이었는데 그중에는 불량자나 범죄인들도 끼어 있었다. 관아는 그대로 눈을 감아주고 있었다.

호벌대는 그런대로 꽤 많은 범들을 잡아 임무를 수행했으나 막상 호환이 가장 빈번한 깊은 산골마을에서는 힘을 펴지 못했다. 특히 무산지역이 그랬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산이 워낙 험하고 수림이 워낙 광대한 무산 산림에는 호벌대가 들어가지 못했고 들어가도 범사냥을 못했다. 호벌대가 범사냥을 할 때는 많은 산골사람들을 동원했다. 관아의 힘을 빌려 100명이 넘는 산골사람들을 동원하여 아예 범이 있는 산을 포위했다. 그리고 꽹과리를 치고 고함을 지르면서 포위망을 압축했다. 호벌대는 그 포위망이 어지간히 압축되면 기다란 창으로 범을 몰아 찔러죽였다.

그게 호벌대의 사냥법이었는데 무산같은 첩첩산중에서는 그렇게 동원할 사람들이 없었다. 아무리 관아의 힘을 빌려도 많은 몰이꾼들을 동원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겨우 열서너명쯤 되는 몰이꾼들을 구해 범사냥을 하다가 도리어 범의 반격으로 몰이꾼들이 죽었고 때로는 호벌대들도 죽었다.

그런데 그런 호벌대들이 왜 그런 첩첩산중에 들어왔을까. 함흥에 있는 관영에서 불호령이 내려왔기 때문이었다. 경복궁 재건에 쓰여질 용재가 들어오지 않았고 나무등을 구하려고 산중에 들어갔던 나무꾼과 목수들의 소식이 끊어졌기 때문에 함흥감사가 어떻게 된 것인지를 알아보라고 그곳 수령에게 엄명을 내렸다.

그래서 지방 수령은 아전 한사람과 호벌대 네사람을 현지에 보냈고 그들은 산골마을에서 아내인 두사람을 구해 나무꾼마을과 포수마을에 가고 있었다.

그러나 아무리 수령의 엄명이라고 해도 그건 무모한 짓이었다. 늦가을의 무산 산중이 어떤 곳이라고 그런짓을 했을까.

그들은 산중에 들어간지 사흘만에 겨우 화전마을에 도착했으나 마을은 비어있었다. 곰과 범들이 설치고 있었기에 화전민들은 모두 피난을 가버렸다.

호벌대원들은 비어있는 화전마을에서 하룻밤을 보낸 다음 다시 산으로 올라갔으나 그때 이미 지쳐있었다. 일행을 지휘하던 아전은 더이상 걷지 못해 등에 업혀갔고 다른 사람들도 비틀거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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