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산의 포수마을(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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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포수와 야수
장비장군의 주변에는 과격한 젊은이들이 있었으며 그들에게는 일전불사(一戰不辭)의 기운이 있었다. 그들은 박사원과 장비장군이 대좌를 하고 있는 사랑방 주변에서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그때 포수마을의 여두목이 나섰다. 여두목은 술상을 차려오게 하고 부드러운 웃음으로 두사람에게 술을 권했다.

“나리 그렇게 하시지요. 별동에 나리가 계실 방을 마련해 놓았으니 거기서 천천히 객고를 푸시면서 어려운 우리들의 실정을 살펴주십시오.”

여두목은 호피 한장을 갖고 오게하여 박사원에게 보여주었다. 아주 큰 호피였으며 무두질이 잘 되어 있었다.

“이건 나리께서 전날 활로 쏘아죽인 범인데 우리마을에 있는 정영감이 무두질을 했습니다. 정영감은 누구보다도 범껍질을 잘 다루는 영감입니다. 그 영감이 다룬 많은 호피가 진상이 되어 나라님의 옥좌(玉座)에 깔려있다고 듣고 있습니다.”

박사원이 웃으면서 장비장군에게 물었다.

“그 범은 내가 쏜 화살에 맞기는 했으나 죽지않고 도망갔는데 누가 그 범을 잡았소?”

장비장군도 웃었다.

“내가 마지막 숨을 끊었으나 그렇게 하지않았어도 이 범은 죽었을 것입니다. 화살이 깊숙이 꽂혀 있었지요.”

두사람은 범사냥 얘기를 했고 서로 상대의 활솜씨를 찬양했다. 그들은 또한 술잔을 주고 받으면서 외적들과 싸운 얘기를 주고 받았다. 무인들의 얘기에 꽃이 피었다. 박사원은 10년전에 함흥관영에서 근무하면서 장성대장군과 함께 국경을 침범했던 외적을 토벌한 일이 있었다.

사랑방 주변에 있던 사람들은 장비장군의 호탕한 웃음소리를 들었고 박사원의 웃음소리도 들었다.

박사원은 포수마을에서 열흘동안이나 머물렀다. 그는 장비장군과 함께 멧돼지 사냥을 했다. 그 사냥에는 포수마을 사냥꾼들과 박사원 일행이 모두 참가했다. 호벌대도 나무꾼들도 참가했기 때문에 모두 100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협동하여 큰 산을 하나 포위하여 여섯마리의 멧돼지와 노루 네마리를 잡았다.

사냥이 끝나자 잔치가 벌어졌는데 소문을 듣고 화전민들과 산골사람들까지 몰려왔다. 장비장군은 몰려든 사람들을 모두 잘 대접했고 돌아갈 때는 짐승고기들을 선물로 주었다.

박사원은 거기서 첩첩산중에서 짐승들과 함께 사는 무산 산사람들의 단결과 우애를 봤다.

박사원은 포수마을에서 지낸 일을 평생 잊지 않았다. 포수마을 사냥꾼들은 좀 거칠기는 했으나 순진한 사람들이었다. 포수마을에는 관가나 양반사회에 있는 겉다르고 속다른 거짓이 없었다. 거기에는 서로 죽이고 죽는 음모가 없었다. 처벌을 해야될 곳은 포수마을이 아니라 관가와 양반들의 사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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