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건축 답사, 런던의 창조적 도시 재생을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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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철민. 제주대학교 건축학부 교수
"런던에 싫증이 난 사람은 인생에 싫증이 난 사람이다"영어사전 편찬자로 유명한 새뮤얼 존슨이 1777년에 한 이 말은 지금도 유효하다. 런던에는 인간이 삶에서 즐길 수 있는 모든 게 있다는 의미다. 그만큼 런던은 다양한 매력으로 가득 찬 도시이다. '런던은 하루에는 다 봐도 한 달 만에는 다 못 본다'고 할 만큼 런던은 많은 얼굴을 갖고 있다. 볼 것, 할 것, 먹을 것, 즐길 것이 거리마다 가득하다.

최근 실시한 제주특별자치도 건축위원회의 유럽 친환경 건축답사에서 마지막 방문지가 바로 런던이었다. 필자도 함께한 이번 답사는 선진사례의 경험을 통해 바람직한 건축물의 설계를 유도할 취지에서 마련되었다. 특히, 런던에서는 제주의 구도심 재생을 위한 방향을 발견할 수 있어 무척 보람된 일정이었다.

런던을 더욱 풍부하게 하는 데에는 단연 건축물이 있다. 단지 건축물 디자인이 독특하거나 아름다운 이유만이 아니라 런던의 건축에는 시간의 다양성이 담겨있다. 웨스트민스터 사원, 버킹엄 궁, 세인트폴 성당 등 수백 년의 역사를 간직한 명소와 새로운 건축물들이 어우러지고 있는 도시경관은 도시에 활기를 더한다.

물론 런던에도 문제가 없는 건 아니다. 런던의 옛 건축물들은 대부분 템스 강 북쪽에 위치하고 새로 생긴 건축물들은 남쪽에 자리하고 있어 오랫동안 런던 통합의 걸림돌이 되어 왔다. 오래된 건축물 중에는 중후하고 안정된 멋을 느낄 수 있는 것도 있지만 낙후하여 사용이 불편하고 주변 환경에 어두운 느낌을 주는 것도 있기 마련이다. 이로 인한 런던 템스 강 북쪽과 남쪽 사이의 불균형을 바로 잡기 위해 런던시는 지속적으로 노력해왔다. 그중 하나가 바로 테이트 모던이다.

이 미술관은 지난 1981년 폐쇄되어 템스 강 변에 20년간 방치돼 있던 거대한 화력발전소였지만 미술관으로 리모델링되어 고품질의 문화예술을 즐길 수 있는 곳으로 재탄생되었다. 테이트 모던을 찾는 사람은 한 해 5백만 명에 이른다고 한다. 런던에서 가장 가난한 자치구 중 하나였던 서더크 지구를 런던의 문화 중심으로 끌어올리며 '테이트 효과'라는 말까지 생겼을 정도다. 리모델링을 담당한 건축가 헤르초크와 드 뫼롱은 옛것을 그대로 인정하고 받아들여 새롭게 활용하고자 했다. 이를 위해 건축물 외형은 대부분 그대로 유지하고 내부를 전면적으로 혁신함으로써 옛것과 새것의 공존을 절묘하게 이뤄냈다.

런던에서 이와 같은 사례를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동부 지역의 명소로 떠오른 와핑프로젝트도 그 중 하나이다. 1890년 지어진 수력발전소를 레스토랑 겸 전시장으로 바꾼 곳으로 전시장으로 쓰이는 지하 보일러실 공간에는 조명과 사운드로 구성된 현대미술작품이 설치돼 있다.

이처럼 구도심의 낡은 건물이나 역사적 건축물을 활용하여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내는 것은 오늘날 도시재생의 핵심적 대안이자 창조도시(Creative City)의 근간으로 주목받고 있다. 단순히 재활용한다는 의미나 인프라를 구축하는 문제를 넘어 과거의 역사를 보존하고 현재적 관점에서 재해석하는 일이며, 과거의 기억과 현재의 만남을 통한 삶의 가치를 회복하는 것이기도 하다.

제주도와 제주대는 연말까지 제주시 삼도2동에 있는 옛 제주대병원 일부를 새로 단장해 창업보육센터로 만들 계획이라고 한다. 또한, 민자를 유치해 중국인을 겨냥한 시푸드 레스토랑으로 조성하는 방안도 추진하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문화예술의 거리를 목표로 제주시는 공유지를 이용한 소규모 공연장과 야외 전시장, 벽화 길을 조성하고, 역사·문화적 정체성을 반영하여 대형 상징 조형물을 설치하거나 빈 건물을 활용해 문화예술 창작·체험·전시와 공예공방, 전통음식 문화체험 등의 공간을 조성할 예정이다.

그동안 편의와 외양의 화려함을 좇아 산업화와 신도시 개발로 그늘에 가려졌던 구도심이 이제 문화예술의 옷을 입으며 새롭게 변신하려 하고 있다. 이제 구도심의 역사적 자산에 문화예술의 다양성이 더해져 문화예술의 도시, 창조도시로 가는 21세기적 도시가 되는 길을 찾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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