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라대학에 서면 밀려오는 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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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정옥 서울과학종합대학원 지속경영연구 원장 / 논설위원
한라산을 넘어 가다 무심코 탐라대학에 들어설 때가 있다. 10년을 다녔던 자동차가 습관적으로 그리 가는 것을 어쩌랴. 모두가 떠난 교정은 적막하다. 남겨진 나무에서 무심코 피어난 꽃들이 추억마저 무상하게 흔들린다. 바로 이곳에서 교육의 100년 대계를 그리며 비전과 사명을 논하였던가? 한바탕 꿈같은 기억이다. 취임식, 입학식, 졸업식의 다짐과 약속도 단상의 주인들과 함께 썰물처럼 사라졌다. 이제는 마치 철 지난 해수욕장처럼 파도가 밀려와 지난 이야기를 토해내려는 듯하다.

파도는 탐라대학 역사의 굽이굽이를 안고 밀려온다. 바로 이곳 거린사슴에 ‘사슴 대신 사람이 뛰놀게 하자’던 서귀포의 다짐이 무너진다. 피땀 어린 마을목장을 거저다시피 내놓은 하원동의 염원도 산산이 부서진다. 우리는 얼마나 오래토록 ‘사람은 서울로 보내고 말은 제주로 보내라’는 조롱에 분통을 삼켜왔던가. 그런데 이 순정을 외면하고 탐라대학은 제주대학농수산학부의 전철을 따라 떠나버렸다. 그때나 이제나 서귀포가 대학을 유치하려는 진정은 무엇을 얻고자 함이 아니다. 그저 대학이 있어 좋고, 대학생들을 볼 수 있어서 흐뭇한 때문이다. 농수산학부가 서귀포에 자리했던 시절, 여고생이 된 나는 잠시 동안 교수아파트에 의탁하여 지냈다. 자연스레 대학생들이 테니스를 치며 환호하는 소리, 무리지어 하숙집을 드나드는 모양, 삼삼오오 책을 끼고 활보하는 모습들을 볼 수 있었다. 지금은 아프니까 청춘이라지만, 당시의 청춘들은 하나같이 건강했다. 바로 그 젊음이 자아내는 활력과 대학이 분출하는 기운이 도시 속으로 스며들었다. 사람들은 배움을 갈망하고, 미래를 바라보았으며, 마침내 대학나무를 만들어 냈다.

그러한 서귀포의 역사는 탐라대학을 더 큰 기대와 애정으로 맞이하게 했다. 더욱이 기초자치단체인 시로 승격한 입장이고 보면, 도시의 품격과 발전을 위해서도 대학은 필수불가결의 요소였다. 실제로 중앙부처나 정부기관 등이 수행하는 프로젝트에 지원하려면 씽크탱크나 전문인력 차원에서 대학은 절대적인 조건이 된다. 대학 없는 도시란 기수 없는 말처럼 공식적인 경주에서 제외되는 게 현실이다. 비록 탐라대학이 위상이나 성과 등에서는 기대에 못 미쳤지만, 존재 그 자체만으로도 서귀포를 도시답게 만들어 준 셈이다. 그러므로 서귀포가 슬로건대로 ‘꿈과 희망의 도시’를 지향한다면, 바로 그 비전을 품을 수 있는 대학을 유치해야 한다. 탐라대학이 버리고 간 땅, 거린사슴은 이름 그대로 인재들이 육성되어야 할 천혜의 교지다. 누구라 하늘의 뜻을 거스르고 감히 이곳을 장사하려 드는가? 이 점을 관할권자인 제주도가 엄정하게 통찰하고 역사에 부끄럽지 않으며 시민에게 죄스럽지 않은 조치를 취해야 한다. 이는 면적의 절반을 차지하는 산남의 균형발전과 도시의 위상을 위해 반드시 수행해야 할 과제다. 물론 경제정의 실현 차원에서도 공정하고 냉철하게 대응해야 할 문제다. 사실 탐라대학이 서귀포시에 둥지를 튼 이래 지역주민들은 같은 마음으로 비전을 품고 웅비하는 미래를 함께 꿈꿨다. 서귀포시와 남제주군은 시민대학, 여성대학, 지식대학, 최고과정, 지도자과정 등의 이름으로 평생교육의 터전을 닦았다. 고등학생들도 많을 때는 한 고교에서 수 십 명씩 입학해 대들보가 되었다. 학교가 어려워지자 리더들은 성산포에서 모슬포까지 ‘발전후원회’를 결성해 버팀목이 돼 주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탐라대학은 ‘님의 침묵’처럼 모든 사랑의 흔적을 떨치고 말없이 가버렸다. ‘이곳에서 운명을 함께 하자’며 학교발전기금을 거두었던 교수로서, 나의 맹세도 한갓 거짓이 되고 말았다. 그래도 십여 년을 살다 가면서, ‘고맙다’는 한 마디쯤 있어도 좋았으련만. 이제 서귀포는 걷잡을 수 없는 슬픔의 힘을 옮겨서 새 희망의 정수리에 들어부어야 한다. ‘삼 세 번’의 필승을 믿고, 꿈과 희망의 돛을 더 높이 올려야 하리라. 서귀포여, 이제는 눈물을 삼키고 오래된 웃음으로 새로운 사랑을 노래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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