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기하는 것이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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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범진 제주대학교 교수 / 논설위원
권투경기를 보고 있었다. 우리나라 선수가 외국 선수에게 신나게 얻어터지고 있었다. 원래 남의 분야에 대해서는 사람이 좀 잔인해진다. 나 또한 그렇다. “밥 먹고 권투연습만 하는 놈이 저렇게 못해서야 관둬야지 저걸 계속하나?” 이게 입에서 자동적으로 튀어나오는 말이다.

그런데 실제로 내 생활을 보면 밥 먹고 공부만 하는 것이 아니다. 자고 먹고 출퇴근에도 시간이 쓰이고 주말엔 쇼핑도 하고 TV뉴스도 매일 보고 신문도 보고 학교에 와도 인터넷도 들어가고 이메일도 보내고 받고 그리고 나면 실은 두어 시간 공부하는 것이다. 공부하는 게 직업인 사람도 의지를 가지고 시간을 챙기지 않으면 두 시간 공부하는 게 고작이다.

어떤 경우에는 학교에 매일 왔는데도 공부는 하나도 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이것은 이 결정적인 두 시간을 도난당하는 경우이다. 그 시간에 누군가 잠깐 찾아와 노닥거리면 시간이 그냥 지나버린다. 또 집중이 되지 않아서 자주 이메일 체크를 하게 되거나 문자메시지, 메신저 등을 수신하는 데 시간을 빼앗기기도 한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내가 한창 공부를 하던 시절, 그리고 지금도 주기적으로 논문을 마감하거나 하는 시기에는 일상적인 일 가운데 몇 가지를 포기함을 알 수 있다. 주말 쇼핑에 참여하지 않고 TV를 끊고 모임에 불참하는 등의 포기를 해야만 공부를 할 수 있게 된다.

이런 면에서 나는 부모가 자녀를 보호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자녀가 한창 공부할 나이가 되면, 제사에도 빼주고 벌초에도 빼주고 집안의 대소사에 참여하거나 잔심부름을 하는 것도 빼주어야 한다. 부모가 이런 의무에서 빼주었는데 빈둥거리고 놀더라도 빼주어야 한다. 빈둥거린 것은 자신의 책임이고 부모는 최소한 공부에 전념할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 의무이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아도 핑계가 없어서 놀지 못하는 학생들에게 이런 행사에 참여하는 것은 좋은 핑계가 되기도 한다.

함께 사는 사회에서 집안일도 중요하다. 그런데 모든 사람이 같아야 하는 것은 아니다. 국방의 의무의 경우에도 모든 사람이 총 들고 보초를 서는 것이 국방의 의무를 다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영어를 잘하는 사람은 통역병을 하는 것이 나라에 유익하고 음식에 자질이 있는 사람은 취사병을 하는 것이 유익하다. 이공계 학생은 무기를 국산화하고 생산하는 국방 관련 연구소에 근무하는 것이 더 국가에 득이 될 것이다. 올림픽에 나가서 금메달을 따는 것으로 국방의 의무를 대신할 수도 있고 훌륭한 학자가 되어 국가에 기여하라고 국방의 의무를 일부 면해주고 다른 일을 시킬 수도 있다.

농경사회와 같이 단순한 사회에서는 모든 사람이 같다. 오히려 다르면 문제가 된다. 그러나 산업사회에서는 같으면 망한다. 달라야 한다. 다른 것은 같지 않은 것이지 틀린 것이 아니다. 그러나 농업사회에서는 흔히 다른 것을 틀린 것으로 이해한다. 우리 사회가 이런 이해를 가지는 것은 산업화가 늦되기 때문이다.

또 사람마다 시기라는 것이 있다. 키가 커야할 시기가 있고 근육과 살집이 붙어야 할 시기가 있다. 키와 살집이 같은 비율로 성장하는 것이 아니다. 마찬가지로 자기가 성장을 해야 할 때가 있고 공동체를 위하여 노력봉사를 해야 할 때가 있다. 젊은이가 집안의 대소사에 참여하는 것을 볼 때면, 설익은 열매가 따먹히는 느낌이 든다. 좀 놔두면 더 도움이 되련만….

이것저것 다 참여하고도 공부를 잘 할 수 있고 제 몫을 다 할 수도 있다. 그런데 자녀에게 그런 초인적인 것을 기대하면 곤란하다. 그런 것은 상당히 무식한 부모나 기대하는 것이다. 또 스스로도 이런 유혹에서 빠져나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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