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라문화제 수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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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인수. 前 제주예총회장/시인
근래 제주 지방지들의 보도에 따르면, ‘2012 탐라대전’ 개막식과 ‘세계 7대 자연경관 공식 인증 행사’가 동시에 치러지게 된 것이 논란거리인 모양이다. ‘도민 대화합’이라는 긍정적인 의견도 있지만, 감사원 감사가 진행되는 등 도민적 논쟁이 마무리 되지 않았고, 계획에도 없는 인증식이 탐라대전에 급작스럽게 포함되면서 축제의 순수성이 훼손될까 우려된다는 것이다.

그것이 ‘세계 7대 자연경관’이라 그렇지, ‘탐라문화제’가 국제 행사나 국내적인 큰 행사를 만나면 늘 ‘들러리 축제’로 밀려나기 마련이었고, 그것이 크게 이상할 것도 없이 치러져 왔던 것도 사실이 아니던가.

1980년 제19회 때는 전국민속예술축제 경축 행사로, 1991년 제30회 때는 UN가입 축하 행사로, 1998년 제37회 때는 전국체육대회 경축 문화 행사로 치러졌다. 1999년 제38회, 2008년 제47회 때도 한국민속예술축제 경축 행사로, 2009년 제48회 때는 세계델픽대회 경축 행사로 치러졌다. 그럴 때마다 ‘탐라문화제’의 정체성은 구겨져왔고, 큰 행사의 그늘에 가려 빛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해왔음은 자타가 공인하는 바였다.

‘2012 WCC(국제환경올림픽)’를 맞으면서 탐라문화제가 또 ‘들러리 축제’의 고역을 치르게 되었는가 싶었는 데, 이제는 ‘들러리 축제’로도 모자라 토사구팽(兎死拘烹)하겠다는 것이 아닌가.

반세기 동안 ‘탐라문화제’ 하나 만을 키우며 믿고 살아온 단체는 뒷전으로 밀어내고, 새로운 조직을 만들어 제주도 문화예술계에선 생소한 인물들을 주역으로 등장시켜 새로운 축제의 모형을 만들어 내겠다니, 목하 제주도는 축제의 혁명기를 맞은 모양이다.

‘토사구팽’이나 ‘축제의 혁명’도 좋지만, 제주 출신 목민관이면 제주를 지켜 온 본토박이들을 음으로 양으로 챙겨줘야 하는 것이 도리인데, 툭하면 중앙의 유명 인사, 뻑하면 국무총리·장관 출신, 쓱하면 대학 총장·교수·교육감 출신, 억하면 유명 연예인들을 동원하여 우매하다고 매도되는 본토박이 문화예술인들의 기를 죽이기에 목을 메는 목민관을 어찌 목사라 할 수 있겠는가.

옛날에 있었던 ‘섬문화축제’ 제주도의 날엔 한국 무용 장고춤이 나와 여기가 서울인가 착각하게 하더니, 이제는 민속의 고장 제주에 단 하나 있던 ‘도립민속예술단’마저 폐쇄해 버리고, 탐라문화제 개막식엔 국립국악단의 성대한 연주, 폐제식엔 제주도립무용단의 한국 무용 부채춤을 추게 하는 문화 행정을 이끌면서도 조금도 부끄러운 줄을 모른다.

‘한국의 지역축제’의 저자 김흥우(金興雨)는 ‘지역축제는 예부터 있어왔던 축제’라고 한마디로 줄였다. 그렇다. 축제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마치 오랜 숙성 과정을 거쳐 술이 익듯이, 지역 주민들과 오랜 세월동안 기쁨과 슬픔으로 부대끼며 자연스럽게 흥이 솟고 자라서 소용돌이치는 것만이 축제라고 할 수 있다는 말이다.

예산권을 쥐고 있다는 실력 하나만으로 오랜 전통의 축제를 좌지우지하겠다는 발상은 마치 돈으로 축제를 산다거나, 참여 주민들을 강제로 동원할 수 있다는 전근대적 사고 방식이 아니고 무엇인가.

또 ‘탐라문화제’에서 ‘문화자’를 떼고 ‘탐라대전’으로 명칭을 변경하는 저의도 궁금하다. 사람이 살아온 일이 ‘문화’가 아닌 것이 어디 있겠는가. ‘탐라역사’, ‘해상왕국’, ‘문도령과 자청비’, ‘바람마차’ 등은 ‘문화’가 아니란 말인가.

‘세계 7대 자연경관 공식 인증을 위한 행사’ 때문이라면 할 말이 없어진다. ‘세계 7대 자연경관’은 ‘문화’가 아님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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