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서운 검객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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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을식. 제주문화예술재단 이사/소설가
계속되는 폭염의 기세가 꺾일 줄을 모른다. 체온에 육박하는 폭염도 무섭지만 밤이면 어김없이 찾아오는 불청객도 두렵다. 어둠이 내리면 숙면을 취해야 다음날의 폭염에도 대처할 여력이 생길 터인데, 이어지는 열대야에 잠자리 마저 괴로운 형편인 것이다.

그나마 이렇게 잠 못 이루는 밤에도 얼마 전 막을 내린 올림픽 소식은 한 가지 위안 거리가 됐다.

이번 올림픽에서 우리 선수들의 선전은 눈부셨다. 대회 중반에 애초 희망한 메달 목표를 달성했다. 참으로 기쁘고 반가운 성과가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이번에 두각을 나타낸 종목을 살피다 보면 좀 특이한 점이 눈에 띈다.

우리나라 선수단이 거둔 금메달 대부분이 공교롭게도 이른바 ‘전투적인 종목’에서 나왔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총을 쏘고(사격), 활의 시위를 당기고(양궁), 검으로 찌르고(펜싱), 멱살 잡아 패대기 치는(유도) 종목에서의 결실. 그래서 한편으론 우리가 언제부터 이렇게 전투적인 기량이 탁월한 민족이었나 싶은 즐거운 의문이 들기도 한다.

그 중에서도 화제는 단연 펜싱이다. 우리 펜싱은 ‘1초 오심’의 희생양 ‘신아람’ 선수로 인해 세계 뉴스의 중심에 섰다. 하지만 지금은 우리 남·녀 선수들이 보여준 출중한 기량과 파이팅 넘치는 경기력으로 인해 세계인의 시선을 받고 있다.

왜 그렇지 않겠는가. 펜싱의 종주국에 속한 유럽 선수들에 비해서 팔·다리가 짧은 신체의 불리함을 딛고 우리 검객들은 금메달 2개를 포함해서 자그마치 6개의 메달을 쓸어 담았다. 정말 놀랍고 신기하지 아니한가.

예전부터 펜싱 경기장은 유럽 국가 선수들의 독무대였다. 때문에 그간 우리 선수들의 성적은 보잘 것이 없었다. 그런데 갑자기 어떻게 이런 엄청난 결과를 낸 것일까. 그것도 남·녀가 고루 말이다. 그저 운이 좋았던 것일까? 그런 것 같지는 않다. 운이 좋았다면 저 어처구니없는 세기의 오심을 겪지 않았을 테고, 그랬으면 메달 하나를 도둑 맞지도 않았을 테니까.

거기에 대한 답은 매스미디어가 쏟아낸 후일담에서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먼저 혹독한 훈련을 이겨낸 선수들의 자부심을 들 수 있겠다. 이들이 신체적인 불리를 극복하기 위해선 각고의 훈련 밖엔 다른 방법이 없었을 터. 그래서 선수들은 외출·외박이 없는 막막한 선수촌 생활을 묵묵히 이겨내며, 언제라도 메달과 바꿀 수 있는 땀과 눈물을 차곡차곡 쌓아두고 있었던 것이다.

거기에다 대한펜싱협회의 전폭적인 지원이 뒷받침됐다. 2009년에 새로 구성된 회장단은 우리 펜싱의 장기적인 발전 계획을 수립하고, 과거보다 경제적 지원을 6배나 늘려 연 20억이 넘는 지원을 하면서 해외 전지 훈련을 꾸준히 보내 실전 경험을 쌓게 했다. 물심양면의 아낌없는 지원 외에도, 협회 고위 임원들은 명절에도 스스로 선수촌으로 나와 출입문을 봉쇄하고 선수들 훈련을 곁에서 도왔다고 하니, 그런 희생과 열정이 선수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을지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또한 공정하고 투명한 선수 관리 시스템도 중요한 요인이다. 아무런 파벌 의식이나 호불호의 선입견 없이 오직 실력을 겨뤄 선수를 선발하고, 선의의 무한 경쟁을 통해 비로소 대표성을 부여하는 토대, 이것이 오늘의 한국 펜싱을 성공으로 이끈 원동력으로 보인다.

펜싱의 본고장에서 당당하게 세계를 호령한 우리의 검객들이 자랑스럽다. 모쪼록 이 무림의 고수들이 앞으로도 계속해서 최고로 거듭나 우리 국민은 물론 펜싱을 아끼는 모든 이들에게 기쁨과 감동을 안겨주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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