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 낯설게하기(making JEJU strange)
제주도 낯설게하기(making JEJU strange)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페이스북
  • 제주의뉴스
  • 제주여행
  • 네이버포스트
  • 카카오채널

이한영. 제주해녀문화보존회 대표
필자가 제주도에 정착한지 어언 3개월이 되어 간다. 이쯤 되니 내 딴에는 어머님들의 제주방언에 장단을 맞출 수 있는 수준은 된 것 같은데 어머님들은 나의 진지하지만 어설픈 발음에 웃기만 하신다. 아직도 나의 실력이 원어민 수준에는 한참 미달되는 모양이다.

‘해녀문화’가 피동적으로 보호받고 계승되어야 할 대상이 아니라 제주도, 아니 대한민국의 자랑스런 ‘문화자원’임을 알리고 싶어 시작된 일이 이렇게 나를 서울에서 제주도로 끌어 올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어찌되었든 지금 나의 제주 생활은 너무 행복하다. 매일 아침 창밖으로 들리는 파도소리에 눈을 뜨며 ‘정령 내가 제주에 있는 것인가?’ 뺨을 꼬집어본다. 아침이면 성산일출봉을 오르거나 집 앞 섭지코지를 산책한다. 해변을 따라 걸으면 새벽부터 파도에 밀려온 감태를 줍는 해녀어머니부터 올레길을 걷는 올레꾼까지 다양한 사람들을 만난다. 얼마 전에는 불과 몇 십 미터 사이에 두고 30여 마리의 돌고래 무리를 보았다. 정말 낙원이 따로 없다.

내가 제주로 내려오며 모든 지인들에게 일일이 제주 이주에 대해 이야기 하고 온 것이 아니기에 오랜만에 전화가 온 지인은 내가 제주에 있음을 알고는 깜짝 놀란다. 그들의 놀라움 뒤에는 한결같이 부러움이 한껏 배어있다. 평화롭고 이국적인 풍광과 맑고 깨끗한 청정지역인 제주도. 육지 사람에게는 제주도에 산다는 것은 그야말로 로망이다.

하지만 정작 제주도민들은 남들에게 부러움과 선망의 대상인 제주도에 살고 있음에도 얼마나 아름다운 낙원에 살고 있는지 잘 모르는 것 같다.

러시아 형식주의자들은 ‘바닷가에 사는 사람은 파도소리에 익숙해져서 더 이상 파도소리가 들리지 않는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들은 그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낯익고 익숙한 세계는 더 이상 우리의 감각에 포착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우리의 감각은 이미 ‘자동화’되어 버렸기 때문이다’라고.

우리가 늘 대하는 세상은 낯익고 익숙하고 편안하다. 그래서 그것을 귀담아 듣거나 주의 깊게 보지 않는다. 마치 우리가 공기에 너무 익숙해져서 단 일초도 없으면 살 수 없는 공기를 느끼거나 감사해 하지 않듯이 말이다.

문예학자 슈클로프스키가 예술의 의미와 창작 방법을 설명하기 위해 20세기 초 만들어 낸 ‘낯설게 하기(making it strange)’는 이런 익숙하고 낯익은 세계를 마치 생전 처음으로 바라보기라도 하듯이 ‘낯선’ 시선으로 바라봄으로써 새롭게 재구성하는 방법을 제시한다. 생전 처음 눈을 갖게 된 사람에게는 세상의 모든 것이 신기할 것이다. ‘낯설게 하기’를 꼭 예술에만 국한시킬 필요는 없다. 세상을 새롭게 보기 위해서 꼭 예술가가 되어야만 하는 것도 아니다. 우리의 삶의 터전인 제주도에 낯익은 시선,자동화된 시선,관습적인 시선을 잠시 접고 너무나 당연히 생각하고 누렸던 제주도를 낯설게 보길 바란다.

한편을 바라보면 늘 푸른 파도가 넘실대는 바다가 보이고 다른 한편을 바라보면 우뚝 선 한라산이 보이는 지상 최고의 낙원 제주도에 산다는 것에 대해서 말이다.

제주도에서 태어나 제주도에서 대학까지 마치고 서울로 상경한 친구가 있었다. 바닷가에서 태어나서 자란 그는 서울에서 사는 것이 그의 로망이었다고 했다. 서울 생활이 20년째인 그는 정말 가슴이 답답하면 인천 앞바다라도 보고 와야 속이 풀린다고 한다. 그리고 자식 대학 보내고 제주도로 돌아가고 싶다고 내게 고백한 적이 있었다. 결국 제주도를 떠나 봐야 제주도의 감사함이 느껴지는 것이 인지상정인가보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