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재자의 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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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관후. 제주4·3희생자유족회 사무국장/소설가
역사는 그 자체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역사를 쓰는 역사가가 있기에 존재하는 것이다.

E.H 카는 ‘역사는 역사가와 사실 사이의 상호작용의 계속적인 과정이며, 현재와 과거 사이의 끊임없는 대화’라고 했다.

결국 역사가에게 요구되는 것은 역사적 서술에 대한 성실성, 그리고 해석과 사실, 현재·과거의 무게 중심 사이에 균형 감각을 가지고 자리 잡는다.

그래서 정치인에게 역사관은 필수적이다. 그의 역사관에 따라 정치는 강물처럼 흐를 수 있고, 국민의 심정을 헤아릴 수 있다.

특히 대선 후보가 국가와 역사에 대해 어떤 가치관을 갖느냐는 매우 중요하다. 군사 반란 행위나 독재 정치를 최선의 선택이라고 한 발언은 대통령 후보로서 짚고 넘어가야 할 국가 정체성의 문제다.

박근혜 대선 경선 후보는 5·16은 불가피한 최선의 선택이라고 했다. 또 그는 “5·16과 유신이 없었다면 대한민국이 존재할 수 있었겠나?”라고 반문했다.

스베틀라나는 스탈린의 외동딸이다. 스탈린은 러시아의 정치가, 공산주의 운동가, 노동 운동가이다. 1924년 1월 21일부터 1953년 3월 5일까지 소비에트 연방의 국가 원수를 역임했다.

스베틀라나는 1967년 미국으로 망명해 “우리 아버지는 독재자였고, 딸로서 침묵한 나도 공범자다. 이제 아버지는 세상에 없으니 내가 그 잘못을 안고 가겠다”고 아버지와 결별했다.

그렇지만 박근혜 후보는 “5·16은 아버지의 불가피한 최선의 선택이었다”라고 말하여 아버지와의 결별을 거부하고 있다.

스베틀라나는 그의 회고록 ‘스베틀라나의 고백’에서 ‘아버지가 독재할 때, 여러분은 왜 침묵 하셨습니까? 그건 공모입니다. 나도 아버지가 잘 하는 줄 알고 침묵했습니다. 나도 공모했습니다. 하지만 이제 아버지가 죽었습니다. 이제 아버지에 대한 비판과 욕을 나에게 하십시오”라고 역설했다.

1961년 5·16 군사 정변은 박정희에 의한 헌법 유린의 시작이었다. 1961년 민주당 정권과 국회는 헌법에 의해 구성된 헌법 기관이었다. 박정희가 탱크와 총을 들고 이를 유린한 것은 명백한 내란이고, 나중에 헌법 개정을 통해 국가를 통치해 왔다 해도 내란이 아닌 걸로 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

박근혜 후보가 언급한 5·16과 유신 독재의 행위 만큼은 정당했다는 발언은 당시 피해를 입은 당사자와 유가족들에게 더 큰 상처가 될 수 있다. 헌법 질서와 민주주의를 어지럽힌 사건을 옹호함으로써 역사관을 의심받을 수 있다.

박근혜 후보는 아버지가 대통령이 되었을 때 11살이었다. 그는 1974년 어머니가 피살되고 5년 동안 한국의 영부인으로 지냈다. 1979년 아버지 박정희가 개인 술 파티에서 총탄에 피살된 후 청와대를 떠났다.

최근 유럽 언론들은 박근혜 후보의 대선 출마 소식을 전하며 ‘독재자의 딸(Daughter of dictator)’이란 표현을 쓰고 있다. 특히 ‘로이터’는 ‘한국 독재자 박정희의 딸’이 아시아의 경제 강국인 한국을 이끌 최초의 여성이 되기 위해 대선 출마를 선언한다고 보도했다.

프랑스 일간지 ‘르몽드’도 ‘독재자 박정희의 딸, 박근혜’라고 소개를 했고, 뒤이어 미국 일간지 ‘뉴욕타임스’도 ‘독재자의 딸’이라고 소개를 했다. 미국 통신사 ‘AP’와 프랑스 통신사 ‘AFP’도 박근혜 후보를 ‘독재자의 딸’로 표현해 왔다.

지금이라도 박근혜 후보가 아버지와의 결별을 선언한다면, ‘독재자의 딸’이라는 멍에가 벗어지지나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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