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이 필요한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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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길주. 전 제주학생문화원장/수필가
어느 심리학자는 ‘인간은 때때로 고독과 벗할 필요가 있다. 고독 속에 침잠해야 제 자신을 응시할 수 있고, 자신의 내면을 바로 보아야 제 정체성을 세워 나갈 수 있는 것’이라 했다. 그게 어쩌면 인간의 성숙 과정이란 생각이 든다.

그러나 오늘의 우리 사회에서 자신이 선택한 고독, 저만이 고고한 자유를 만끽할 수 있는 그런 경지의 삶이란 철 지난 사치품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걸으면서도 이어폰을 꽂아 뭔가를 들어야 하고, 잠을 잘 때도 TV나 스마트폰이 자장가를 대신해 줘야 잠이 드는 시대다. 가족과 식사 할 때도, 친구와 대화하면서도 스마트폰의 자판을 또닥거린다. 상대와 진지하게 눈을 마주하며 대화할 겨를도 없이 살아가는 세상이다.

자신의 꿈·걱정·희망을 고민하며 고독에 젖기 보다는 사회 연결망에 몰입하는 게 살아가는 이유가 되어버린 사람들로 넘쳐나는 사회.

법 없이도 살 사람은 무능한 사람이 돼버리고, 뻔뻔 모드로 무장하여 부끄러움까지 내던져 버려야 떳떳한 사람으로 취급 받는 세상.

인터넷에 떠도는 여론의 시시비비를 가리기 보다는 지지나 반대부터 감행하고 보는 억지가 용기로 통하는 시대.

이런 행태들이 인터넷이라는 가상 공간에서 개인이나 조직을 벌떼처럼 공격하여 곤궁에 빠뜨리고, 게릴라식 여론 몰이로 정치 판세를 단숨에 뒤집어 놓아도 속수무책인 나라다. 정신적인 허기뿐 아니라 영혼의 허기까지도 인터넷에 내맡기고 살아간다면 지나친 비약일까?

또 한편에선 강제적이거나 피할 수 없는 상황 때문에 외로움이나 고독에 갇혀 사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이른바 ‘고립 효과’ 현상으로 심리나 행동이 격해지게 되고, ‘묻지마 범죄’의 주역일 수 있다는 진단이다.

하루가 멀다 하고 우리를 공포에 떨게 하는 사건·사고들이 이를 증명이라도 하는 듯 빈도와 강도를 더해만 간다. 우리 사회의 또 다른 험상이라 해야 할지….

예전에 우리 국민성을 ‘무조건 저질러놓고 보는 성급함’으로 진단한 글을 읽은 적이 있다. 그땐 ‘그럴까?’ 의심도 해봤지만, 차츰 이를 수긍하는 편으로 기운다.

그렇지만 인간의 성격은 양면성을 띠게 마련이니 성급함이라고 해서 딱히 나쁜 것만은 아니다. 그 성급한 냄비 근성이 우리 경제와 민주주의를 단기간에 세계 선진 수준에 올려 놓지 않았는가.

아직도 열기가 남아있는 런던 올림픽에서의 세계 5위 달성도 이와 무관치 않을 듯 싶다. 이처럼 성급함이 긍정의 힘으로 작용한다면 개인이나 사회 발전의 위대한 동력원이 될 수도 있음이다.

머지 않아 대선엔 또 다시 사회 연결망 서비스(SNS)의 위력이 판세를 좌우할 것이다. 그러니 거길 겨냥한 의혹 제기가 난무할 테고, 아직은 상황 판단이 덜된 이들을 겨냥한 ‘아니면 말고’ 식의 치졸한 치고 빠지기 꼼수도 난타전일 것이다.

다양한 시대의 화두들이 정쟁의 이슈로 떠올라 인터넷 웨이브를 수없이 넘다보면 소셜 미디어판도 아수라장이 될 게 뻔하다. 이런 때일수록 상대를 헐뜯기 보다는 올곧게 제 정체성을 내세우는 정치가나 정치 집단이 필요한 법이고, 결정권을 행사해야 할 유권자의 판단은 더더욱 진중을 기해야 할 것이다.

축제의 한마당은 아니어도 세계의 이목에 조롱거리 작태를 내보일 수는 없지 않은가.

어느 현자의 물음처럼 남 따라 사는 삶이 아니라 내가 내 삶을 제어하며 사는 삶, 그 힘은 어디서 나올까? 그 해답을 찾기 위해 잠시 고독에 잠겨 볼 일이다.

인간의 거의 모든 불행은 제대로 고독할 줄 모르는 데서 생겨난다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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