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괄량이 가르치기
말괄량이 가르치기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페이스북
  • 제주의뉴스
  • 제주여행
  • 네이버포스트
  • 카카오채널

변종태. 시인/다층 편집주간

중학교 교사로 19년차인 나는 그동안 교육을 둘러싼 외·내적 환경이 엄청나게 달라졌음을 실감한다. 처음 교단에 설 때만 해도, 선생님들의 영향력은 절대적이었고, 그러기에 교사들의 학생 사랑은 유난했다.
더욱이 필자가 근무하는 곳은 사학인 까닭에 평생을 매달릴 곳이라는 생각으로 학교에서 종종 교장과 교감에 대한 불만을 토로하다가도 시선이 아이들에게로 옮겨지는 순간, 선생님들의 눈빛은 금세 달라지곤 했다. 그러한 까닭일까. 가장 진학하고 싶어하는 학교 1순위로 꼽히며 해마다 2배수의 신입생이 지원을 하는 학교가 되었다.

 

지금도 함께 근무하는 동료 교사들의 교육적 열정은 예전과 변함이 없다. 하지만 시대가 시대인지라, 종종 학부모님들이 선생님들을 대하는 태도를 보면 아무리 세월이 변했다고는 하지만, 이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그 어떤 교사가, 자신이 가르치는 학생을 잘못되라고 가르칠까. 학생의 잘못을 보고 꾸짖고 타이르면 교사에게 감사까진 아닐지라도 인정은 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언젠가 학부모와 전화로 다툰 적이 있다. 그 때 학부모에게 “따님을 공주처럼 키우신 모양입니다”했더니, 당당하게 “그렇다”고 했다. 그러기에 다시“저희 반엔 40명의 공주가 있다”고 말했다. 집에 가면 공주 아닌 딸이 누가 있겠는가.

 

집에서 공주일수록 그 말과 행실이 단정하게 닦여야 함을 생각해 주셨으면 한다. 그러한 행실을 지도하는 교사들에게 항의하기 이전에, 왜 그러한 지도를 해야 했는지를 냉정하게 생각하신 후, 부당한 일에 대해선 절차를 밟아 시정을 요구할 일이라 생각된다.

 

나 또한 아들 둘을 학교에 맡기고 있는 학부모의 입장이다. 더러는 선생님이 하신 지도가 납득이 안 가는 경우도 없지는 않지만, 입장을 바꿔 생각하면 지도할 이유가 있어 지도 받은 경우가 태반이다.

 

교육 현장은 외부의 간섭이 심할수록 위축되고, 아이들을 향한 눈길은 차가워진다. 공연히 시빗거리가 될 것이면, 잘못하는 학생들을 보고도 외면하게 되는 것이 인지상정(人之常情)이란 말이다.

 

한 두 학부모의 성급한 언행이 교육 현장을 황폐화시킨 것은 제주에서도 구체적인 사례들을 들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아이들의 모습을 보면 그 뒤에 부모님들의 모습이 그대로 보인다. 가정에서, 자녀들 앞에서 하시는 언행을 자녀들은 그대로 보고 배운 결과라 생각한다. 그러기에 ‘어른은 아이들의 거울’이라 하겠다.

 

물론 무조건 교사의 편에서, 교사들의 입장을 옹호하고자 하는 생각은 없다. 당연히 비판을 받을 것은 받고, 시정할 것은 시정돼야 교육은 더욱 건강해진다. 하지만 아이들이 듣는 앞에서 교사에 대한 험담을 하는 것은, 그 이후 그 교사의 지도가 아이에게 아무런 의미도 없는 공염불이 되고 만다는 사실을 생각할 때, 자칫 부모님들의 순간적인 말씀이 부메랑이 되어 교육력의 부재로 자녀들의 미래를 망치는 결과로 이어진다는 점을 말씀드리고자 하는 것이다.

 

교사들의 부당함에 대해 시정을 요구할 것이 있으시다면, 학교의 교감·교장 선생님과 의논하시는 것이 가장 빠르고 정확한 방법임을 말씀드리고자 한다. 아이들을 앉혀놓고 그 앞에서 해당 교사를 험담하는 것은, 순간적인 감정 풀이는 될지언정, 아이들에겐 엄청난 부작용을 낳는다는 점을 말씀드리고자 한다.

 

인간이 감정의 동물이기에 이성적으로 그렇게 처신할 사람이 얼마나 되겠느냐고 하시겠지만, 교육은 최대한 이성적이어야 한다. 순간적인 감정으로 아이들의 미래에 부정적 영향을 주는 것은 교사나 부모님이나 원치 않는 일이라 생각되기 때문이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