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둥과 번개가 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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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을식. 제주문화예술재단 이사/소설가
풀벌레 소리 높아지면서 조석으로는 벌써 가을 분위기가 완연하다. 유난한 폭염과 열대야로 우리를 지치게 했던 여름이 저만치 멀어져 가고 있음을 실감한다. 이번 여름 더위는 유난스러웠다. 해가 떠오르면 기온은 체온에 가깝게 오르고, 올라간 수은주는 밤이 되어도 내려갈 줄을 몰랐다.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기록적인 더위였다.

그렇게 지독한 여름을 보낸 지금, 주택가에선 전기료 고지서를 받아들고 분노하는 음성이 드높다. 고지서를 흔들며 ‘이게 폭탄이 아니고 뭐냐’며 목청을 높인다. 남의 일이 아니니 이해가 쉽다.

전기 요금이 폭탄이 된 내력을 설명하는 한전의 태도가 깔끔하다. 과도한 전기 사용으로 누진율이 적용되어 그렇다는 것이다. 맞다. 살인적인 무더위를 견디느라 대부분의 가정에선 냉방기기를 도리 없이 사용했고, 그에 따라 계량기 원반은 팽이처럼 돌았을 것이다.

요금 폭탄의 탄생 과정은 이렇듯 이론의 여지없이 간단명료하게 정리됐다. 그런데, 그런데도 왜 이렇게 마음 한구석이 마치 젖은 속옷을 입은 것처럼 찜찜하고 불편한 것일까.

아무래도 누진제가 이상하다. 알다시피 누진제는 오일 쇼크를 겪으면서 에너지 절약 방책으로 탄생했다. 그런데 누진제는 왜 유독 주택용 전기에만 적용이 되고 있는 것일까? 주택용 전기가 차지하는 비중이 커서인가?

자료를 들여다보니 우리나라 전기 총사용량 중 주택용 전기가 차지하는 비율은 18%에 불과했다. 산업용이 55%, 일반용이 22%다.

이것은 무엇을 뜻하는가. 좀 가혹하게 말하면 우리 정부는 겨우 18%에 불과한 주택용 전기에만 에너지 절약이라는 멍에를 씌우고 ‘누진제’라는 채찍을 40년 동안이나 휘두르고 있는 셈이다.

더 들여다보니 공급 가격도 주택용이 제일 비싸다. kw당 주택용은 119.99원인 반면, 일반용은 101.61원, 산업용은 82.23원이다. 그러니까 주택용 전기 사용자는 상대적으로 이렇게 비싼 전기를 사 쓰면서 여차하면 누진율까지 받아 요금 폭탄을 맞고 있는 것이다.

이게 공평 사회의 시대 정신에 맞는 에너지 정책인가? 백번 양보해서, 산업용이나 일반용 전기는 아껴서 쓰는 데, 주택용 사용 가구에선 전기를 제멋대로 펑펑 쓴다면 그럴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실상은 명쾌했다. 우리나라 가정에서 전기를 얼마나 아껴 쓰는 지는 선진국 몇 나라와 비교하면 쉬 이해가 된다.

우리나라 1인당 가정용 전기 소비량은 1183kw다. 이는 미국의 4430kw의 4분의1 수준이고, 일본의 2248kw, 프랑스의 2639kw에 비교해도 절반 수준에 불과하다.

40년 전 오일 쇼크가 왔을 때 전기를 아끼자고 도입한 누진제의 역할을 모르지 않는다. 당시로선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을 것이다. 산업을 일으켜 국가 경제를 튼튼하게 쌓아올려야 할 명제가 시대의 사명이기도 했던 시절이니 산업용 전기에 대한 지원책이 절실했을 것이다. 주택용 전기를 좀 희생해서라도 말이다.

그러나 이제 시대가 변했고 여건이 달라졌다. 그런 지원을 통해 일어선 기업들이 당당하게 세계를 누비고 있지 않은가. 그러므로 이젠 균등·보편·합리의 시대 정신에 걸맞은 방향으로 전기 정책 또한 나아가야 한다고 믿는다.

요즘 요금 폭탄에 대한 아우성이 커지자 한전에선 6단계 누진율을 3단계로 줄이겠다며 또 꼼수를 준비하고 있는 모양이다. 그러지 마시라! 전기 가지고 묘기 부리다 번개와 천둥을 맞는 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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