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떼배 부활을 위한 제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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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바다. 고대 해양 탐험가/하멜 기념사업회장
배의 역사는 대략 1만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07년 8월 국립 김해 박물관 창녕 비봉리 패총 발굴 조사에서 8000년 전으로 추정되는 통나무배가 발굴됐다.

지금까지 발굴된 배 가운데 가장 오래된 배로 밝혀지고 있다. 이러한 통나무 배는 떼배의 원형에서 한 단계 진화된 것이다. 떼배는 한국 해양 문화의 시원에서 빼놓을수 없는 배의 조상이라 하겠다.

배의 발달과 진화 과정에서도 이처럼 끈질기게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원형을 유지하며 현대와 공존할 수 있었던 생명력은 과연 무엇일까.

그것은 떼배가 제주의 자연 환경과 풍토에 적응할 수 있었던 선인들의 지혜로운 적격 판정 때문이다. 이토록 오랜 세월 동안 제주인과 동반자가 되어 명맥을 유지해 온 떼배처럼 걸작인 명품은 없다.

시대 변화에 따라 모든 것은 변한다. 그러나 유일하게 제주 떼배는 변하지 않고 무구한 생명력을 유지하고 있다.

필자는 선조들이 남긴 이러한 명품을 세상에 널리 알리고자 일본을 3차례 항해했다. 떼배는 범선 항해 시대에 이르기 까지 공존하며 그 생명력을 유지하고 있다.

이러한 긍지와 자부심 때문에 2001년 영암 대불항에서 일본 가라쓰(唐津) 항까지 일본 학문과 문화의 대표적 스승으로 추앙받는 백제 왕인박사 뱃길 탐험 항해에서도 범선보다 떼배를 선택하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오늘날 배의 조상이라고 할 수 있는 떼배의 오랜 역사와 문화 때문이다. 탐라국 탄생 신화와 벽랑국 뱃길 탐험에서도 발달된 범선보다 고집스럽게 떼배를 만들어 타고, 화북 포구에서 강진 마량항에 이르는 항해를 했다. 이처럼 떼배는 제주인들의 바다에 대한 도전 정신과 정체성을 찾아가는 데 중요한 아이콘이다.

필자는 20여 년 전 강원도 삼척시 정동진과 갈산2리를 찾았다. 오동나무로 만든 여러 척의 떼배를 만날 수 있었다. 흥미로운 사실은 이 마을에서 제주 출신 해녀들을 만날 수 있어서 그 반가움이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오래 전부터 이 곳에 정착했다는 것이다.

1997년엔 제주도와 200여km 거리에 있는 일본 오도열도 후쿠에(福江)시를 답사할 기회가 있었다. 이곳에도 떼배가 있었다는 이야기를 주민으로부터 들을 수 있었다. 그 후 대마도 답사에서도 떼배를 만나고, 중국 복건성 무이산 계곡 답사에서도 대나무로 만든 떼배를 만났다.

떼배는 오래 전부터 인류가 문화 이동과 채집 수단으로 이용하고 있었음을 여러 곳에서 확인할 수 있는 기회가 됐다. 이러한 떼배의 역사와 문화성에 대한 이해와 관심을 폭넓게 기울일 때가 왔다.

떼배는 누구나 손쉽게 만들 수 있다는 이유만으로 배의 문화를 외면해선 안된다. 떼배는 당시 선사인들에게 최고의 조선 기술을 동원한 과학적인 걸작품이라는 사실을 고고학적 측면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떼배는 제주 뿐만 아니라 한국 해양 역사와 문화의 원류를 찾아가는 데 중요한 뿌리가 되고 있는 대표적인 유산이다.

뿌리를 외면한 역사와 문화는 없다. 이번 탐라대전에서 제주인의 삶 속에 뿌리 깊이 내리고 있는 떼배를 만날 수 없는 것은 큰 아쉬움으로 남는다.

떼배 제작 과정이 단순하고, 손쉽게 누구나 만들 수 있다는 일각에서의 평가 절하는 조상들의 소중한 문화 유산에 대한 자해 행위나 다름 없다.

제주도가 유네스코 자연 환경 3개 분야 등재와 세계자연보전총회에서 보여주고 있는 역량만큼 지키고 보전해야 할 것이 있다면, 선조들의 지혜를 모아 지켜 온 떼배에 대한 부활을 꿈꾸며 이에 대한 창의적인 연구와 보존책에도 눈높이를 두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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