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년을 부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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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현. 前 제주수필문학회장/수필가
사범의 선창에 따라, 수강생의 한 동작 한 동작이 율동적이다. 처음 시작하던 몇 주 전만 해도 어색하고 엉거주춤했다.

연금공단이 야심차게 계획한 문화 프로그램 중 자기 취향에 맞는 종목을 골라 지원한 수강생들이다. 그들은 갓 공직에서 퇴직한 60대 초반에서 80대 중반까지 다양한 연령층이 모여 ‘국선도’ 수련을 받고 있는 전직 공직자들이다.

국선도는 육체의 유연성을 유지하며 건강을 지키는 데 도움이 됨은 물론, 마음 수련 면에서도 유익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련 시간의 절반은 명상인 데, 내면의 세계를 관조하며 성찰의 기회가 되고 있다.

명상은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한편, 타인을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도와주고, 연민의 감정과 선을 행하는 지혜를 얻는다. 간절히 염원하면 이뤄진다는 신념이 생기고, 결과가 자신보다 타인에게 유익할 때 실현될 확률이 높다. 일상 생활에선 좀처럼 갖기 어려운 자신과의 대화를 통해 “나는 어디서 왔고, 어디로 가는가?”라는 본질적인 자문자답을 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는 생각이 들었다.

퇴직은 또 한 번의 미지의 세계로의 진입이고, 그로 인해 우리는 망망대해로 향하는 어부의 불안한 심정을 가지게 된다.

일을 할 때보다 좀 더 의미있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강박 관념이 그것이다. “고난 속에 인생의 기쁨이 있다. 풍파없는 항해, 얼마나 단조로운가. 오늘을 즐기고, 현재에 살아라. 자신의 운명 그 자체를 사랑하라. 신은 죽었다” 니체의 말이다. 우리는 이런 삶을 살 수는 없을까?

우선 미움과 절망을 품는 것에서부터 시작하자. 우리에겐 나이만큼 쌓인 사리 분별력이 있다. 노년은 이 세상에 신도 악마도 없는 단지 인간 그 자체만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시기다. 그래서 젊은 날의 만용까지도 둥글둥글해지고 사물을 보는 눈은 따스해 진다. 이러한 덕목을 갖추려면 스스로에겐 엄격하고, 타인에겐 관대해야 한다.

시간은 우리에게 성실하게 살 것을 요구한다. 잉여 시간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오래 살게 되면 얻는 것도 있지만 잃어버리는 게 더 많을 것이다. 상실을 준비해야 할 이유이다. 그것은 잃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상실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주변의 사람도 재물도 명예도 자신을 떠나간다. 이것이 노년 이후의 숙명이다.

추하고 비참한 것에서도 가치를 발견해 내는 것이 노년의 지혜라 하겠다. 사고(思考)와 가치관을 공유할 수 있는 친구는 수명을 5년 이상 연장시킨다고 했다. 그런 친구 한 두 사람쯤 주변에 둔다면 영웅호걸이 어찌 부러우랴.

내가 없어도 세상은 돌아간다는 사실이 우리를 초라하게 만들지 모르나 그것이 만고의 진리다. 노후에 감당해야 할 첫 번째가 고독과 소외감이다. 이를 겸허하고 또 결연하게 넘어서는 것이 노익장의 관건이다.

무례한 언동을 책망하거나 타일렀다고 고맙게 수용할 영웅(?)은 없어 보인다. 마음을 내려놓는 것이 상책이다. 우리는 젊어 봤지만 그들은 늙어보지 않아서 모른다. 남을 대할 때는 외양이 아닌 그 사람이 어딘가에 숨겨져 있는 인간미와 따뜻한 심성의 존재 자체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는 안목을 길러야 하겠다.

노년은 조금씩 비우다 결국 아무것도 남지 않을 때 세상을 뜨는 게 하늘의 뜻이다. 세월 따라 기력이 쇠퇴해지는 만큼 마음도 따라 너그러워지는 자세가 ‘인생 3기’의 참모습이겠다.

봄·여름·가을 들녘의 변화와 같이 여생을 자연의 순리에 맡기고 황금빛 노을의 장엄함처럼 그렇게 빛나려는 노년의 야망을 가져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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