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출봉 섬 될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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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중훈. 시인/국제PEN한국본부 제주지역위원회장
지난 6일부터 15일까지 제주에선 역사적인 ‘세계자연보전총회(WCC)’가 열렸다. 세계 180개국 1만여 명의 관계자들이 참가했다는 점과 동북아에선 처음으로 우리 제주가 이 행사를 개최할 수 있었다는 점이 대견스럽고 가슴 벅찬 일이다.

더군다나 유네스코 국제 보호 지역 통합 관리 체계 구축 등 5개의 제주형 의제 채택과 함께 IUCN(세계자연보전연맹) 64년 역사상 최초로 제주의 환경적 자산 가치와 보존의 중요성 등을 골자로 한 ‘제주 선언문’이 채택됐다.

이러한 역사적 사실은 언론의 머리 기사로 연일 보도되어도 지나침이 없다. 그렇지만 호사다마라고나 할까. 지난 8월부터 시작된 태풍 ‘볼라벤’, ‘덴빈’이 헤집고 간 자리를 제16호 태풍 ‘산바’가 뒤풀이라도 하듯 제주 전 지역을 초토화 시켜놓고 말았으니 세계자연보전총회의 공과는 어느새 뒷전으로 밀리고 말았다.

세상천지가 온전한 데라곤 없을 만큼 가히 엄청난 재앙이다. 그렇다면 세계자연보전총회를 성공리에 마무리한 우리에게 이들 태풍이 주는 메시지는 무엇일까. 혹여 자연을 잘못 다스리면 이런 재앙도 불러올 수 있다는 메시지는 아닐까.

하루에도 수천명씩 찾아드는 우도엔 제주도가 자랑하는 천연기념물 제438호 ‘홍조단괴 해빈’ 백사가 있다. 그 눈부신 모래밭이 야금야금 유실되더니 급기야 이번 태풍엔 바닥까지 드려내고야 말았다는 소식이다.

이는 제주시가 실시한 용역 보고서가 아니더라도 해안도로와 호안 벽이 원인이라는 것이 일반적 상식이다. 이러한 현상은 비단 이곳만이 아니다. 천혜의 자연 경관을 자랑하는 성산일출봉 바로 발아래로부터 섭지코지까지 이어지는 해안가인 속칭 ‘앞바르’ 모래밭도 예외는 아니다. 그 해안가 지형이 확 바뀌고 말았다.

그만큼 기막힌 자연 파괴를 불러오고야 만 것이다. 이 역시 지난해 제주도가 시공한 호안 벽이 가져온 결과다. 한마디로 자연을 잘못 다스린 탓이다.

그 넓은 모래밭이 삽시에 파헤쳐져 버린 것도 그렇지만, 그와 함께 수백년 뿌리내려 모래의 유실을 막아주던 숨비기나무 숲까지 파헤쳐 놓고 말았다. 이대로라면 성산과 고성을 잇던 개미허리 같은 한 가닥 육로마저 동강나서 머지않아 일출봉이 섬이 되고 말 지경이다.

더구나 안타까운 것은 이러한 호안 벽 시설 같은 자연을 다스리는 일을 함에 있어서 아무런 사전 영향 평가도 없이 ‘지역 주민이 원해서’이뤄졌다는 데 있다.

그런데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을 성 싶다. 보도에 의하면 50만 평의 성산항 내항 일부가 일출봉 관광객을 위한 주차장용으로 매립한다고 한다. 한마디로 기가 찰 일이다. 누구든 일출봉에 올라가 보면 알 것이다. 그 발 아래 펼쳐지는 성산항 내수면의 수려한 자연 경관과 그것들의 존재 가치가 일출봉에 미치는 영향을….

만약 이들 경관이 일출봉 주변에 없었다면 유네스코는 과연 일출봉을 세계자연유산으로 인정해 주었을까. 여인의 치마허리처럼 혹은 여인의 앞 옷섶처럼 여리고 가늘게 이어진 이 해안선 라인을 감히 누가 손을 대려 함인가.

혹자는 ‘뭐 그까짓 바닷가 한 귀퉁이쯤 매립한들 무슨 대수냐? 혹은 그 많은 관광객을 어떻게 수용할 거냐?’라고 항변할 지도 모른다. 반문 컨데 꼭 이 수려한 자연 절경을 손상시키는 것 외에 다른 대안은 없느냐는 거다.

일출봉과 그 주변 경관 때문에 찾아온 이들을 위해 그 경관의 일부를 훼손하겠다는 이율배반적 발상 자체가 웃긴다. 제주의 환경적 자산 가치와 보존의 중요성 등을 골자로 한 WCC의 ‘제주 선언문’ 채택이 부끄럽지 않게 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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