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통합은 교육소통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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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창식 前 탐라대 총장 / 논설위원
며칠 전 텔레비전에서 방영되었던 이야기다.

7년 전, 한 인도여성이 시골에 사는 청각장애인에게 시집을 왔다. 그러고는 사내애를 3명이나 낳았지만 눈빛과 몸짓으로만 나누는 대화는 늘 어딘가 모르게 아쉬웠고, 자녀들은 의사소통이 안 되는 아버지를 무시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그러던 어느 날 아내가 읍내 성당에서 수화를 배우기 시작하면서 집안 분위기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부부간에 대화가 이루어지고, 아이들도 덩달아 수화로 아버지와 소통하게 되었다. 마음을 소통할 수 있는 수화 하나가 행복한 가족통합을 가져다준 것이다.

현대사회에서 소통부재로 인한 부작용은 수없이 많다.

소통부재는 사람들 간에 분란과 단절을 가져오고 사회적으로도 갈등의 요인이 되어 사회통합에 걸림돌이 된다. 어디서나 휴대폰으로 전화하고, 뉴스를 접하고, SNS를 하지만 오히려 소통의 질은 훨씬 떨어지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 청소년 자살률이 세계에서 최고인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교육과학기술부의 자료에 의하면 지난해 자살한 학생은 202명으로 전년 137명에 비해 47% 급증했다. 자살원인은 가정불화와 같은 가정문제가 34%로 가장 많고, 우울증·비관, 성적 비관, 이성 관계, 신체 결함이나 질병, 폭력과 집단 괴롭힘 순이었다.

한편 청소년 7만4000여 명의 건강행태 조사를 분석한 결과를 보면 자살을 시도한 적이 있는 자살시도율은 4.5%, 자살을 진지하게 고려한 경험이 있는 자살생각률은 19%였다. 즉 청소년 5명 중 1명이 생과 사의 경계에서 고민하고 있다는 것이다.

청소년들의 자살문제는 국가적으로 절박한 과제다. 언제까지 최대의 정신적 빈곤국가로 머물 것인가.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 고민하는 아이들이 없도록 교육소통의 변혁을 이루어야 한다. 더 많은 학생들이 희생을 치르기 전에 새로운 변화를 모색하지 않는다면 선진국 진입은 희망으로 끝날 수도 있다.

요즘 사회 각계에서 사회통합을 부르짖고 있는데 그 시발점은 교육소통에서부터 이루어져야 한다.

교육이란 그릇을 가득 채우는 것이 아니라 그 그릇을 크게 만드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아이들에게 희망과 꿈을 주기보다 오히려 어른들의 현실에 애들을 묶어두고 있다. 단순히 그릇을 채우는 한 방향 교육에서 그릇을 키우는 쌍방향 교육으로 전환하여야 한다.

학교는 똑똑한 인재만을 키우는 곳이 아니라 사회구성원으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하고, 다양한 사람들과 공생할 수 있는 사람을 길러내는 것에 가치를 두어야 한다. 따라서 지식을 주고받는 수동적인 교육을 넘어서 아이들 스스로 몸으로 익히고 깨우치는 체험 중심의 교육시스템으로 확대해야 한다. 한마디로 아이들이 가고 싶은 학교여야 한다.

우리는 어느 나라보다 교육열은 뜨겁지만 교육의 방향이나 방법은 근대적인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교육은 울타리가 되어서도 그 속에서 얽매이게 해서도 안 된다. 닫히고 갇힌 교육을 왜 우리나라만 행하여야 하는가. 울타리에서 한 발자국만 나와도 문제아로 낙인찍히는 현재의 가두리식 교육방법은 누구를 위해서도 바람직하지 못하다.

국가의 경쟁력은 획일화된 경쟁에서 나오지 않는다. 인간의 다양한 가치를 존중하고 다양한 능력이 보상받는 역동적인 풍토에서 나온다.

사회통합은 획일성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다양성에서 오는 것이다. 아이들이 가고 싶은 학교, 교사가 신나는 학교, 지역사회와 소통하는 학교가 돼야 한다.

그 공생의 시발점은 교육현장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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