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정거장에서 후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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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방영 제주한라대학 교수 / 논설위원
잠깐 가방을 꾸려 들고 밖으로 나갔던 어느 금요일, 흐린 저녁 하늘에서 비가 한 두 방울씩 떨어졌다.

퇴근시간의 버스정거장에는 사람들이 모여들고, 구경꾼처럼 그들 가운데 서있었는데, 두 손에 대형 마트의 큼직한 종이가방을 하나씩 들고 있는 남자가 눈에 들어왔다. 그의 종이가방 중 하나는 가운데가 터져 작은 상자가 밖으로 삐죽이 드러나 있었다.

축축한 날씨에 찢어지기 시작한 종이 가방이라니, 더 길게 찢어지면 그 안에 내용물들을 어떻게 감당할까. 그 남자의 얼굴을 살폈지만 아무런 걱정 기색 없이 오는 버스를 살피느라 목을 길게 빼고 있었다. 내 가방 속에는 이중삼중 종이봉투로 물건을 싸서 다시 헝겊 가방에 넣고 가져 온 물건이 들어있었다. 그 헝겊 가방을 꺼내어 그 남자에게 준다면 허술한 종이 가방으로 인해 빚어질 말썽은 충분히 방지할 수 있을 것이었다.

그런데 어떻게 다가가서 뭐라고 말을 할까. ‘당신의 종이가방이 곧 찢어지게 생겼소. 이 헝겊가방을 쓰시오.’라고? 본인이 걱정을 않는데 왜 내가 문제를 지적하고 해결하려 하는가. 이 노심초사는 과연 타당한가, 그는 나의 제안을 쾌히 받아들일 것인가.

이런저런 망설임으로 머릿속 만 복잡하다가, 내가 신경 쓸 사항은 아니라고 애매한 결론을 내렸다.

시선을 거두고 다른 생각을 하는데 갑자기 그릇들이 깨지는 소리가 들렸다. 아까 그 남자였다. 버스에 오르려는 찰나에 종이 가방이 찢어졌는지, 내용물들의 반은 버스 안에 떨어지고 나머지 반은 버스 밖 아스팔트 위에 떨어져 뒹굴고 있었다. 그는 먼저 버스 안에 떨어진 물건들을 집고, 내려서 밖에 물건들을 줍기 시작했다. 버스는 가버리고, 멀리 떨어져 있는 김치가 담긴 비닐 묶음을 주우면서 어찌어찌 사태가 수습된 듯 했다.

못쓰게 된 것들이 쓰레기통에 들어가니 두 개였던 종이 가방은 하나가 되어서 그의 가슴에 안겨있었다. 담을 공간이 없어진 검은 플라스틱 슬리퍼 두 짝은 겹쳐서 봉투 밑에 손으로 받쳐 들고 있었다. 그가 겪는 당혹감과 물질적 손실에 대한 안쓰러움이 내 책임으로 다가왔다.

그 안타까운 상황을 예견하면서도 행동으로 막지 못하여, 작게는 한 사람을 마음 아프게 하였고, 더 나아가면 지구에서 짜낸 자원을 즉각 쓰레기로 환원시키도록 내버린 죄를 지은 것이 바로 나였다.

이제라도 내게 있는 여유 가방을 꺼내 줄까하고 가방을 열었지만, 그 사람은 다가온 버스에 올라서 앞의 좌석에 앉고 있었다.

줄래야 줄 수도 없고 또 준다고 해도 도움 안 되는 상황으로 종료된 것이었다.

인색함이든 우유부단이든 내 책임이 아니라고 구실을 달고, 알면서도 즉시 마땅한 행동으로 사고를 막지 않고 그냥 벌어지도록 내버렸을 때, 남는 것은 후회 밖에 없다.

충분히 줄 수 있었는 데도 머뭇거리며 인색하게 굴면, 밝고 온전하게 흘러갈 삶을 졸렬하게 만들었기 때문에 스스로를 꾸짖게 되는 것이다.

삶은 매 순간을 바로 바로 붙잡는 것이기에 놓치고 나면 이미 돌이킬 수 없다.

이런 소리 없는 꾸짖음이 가슴을 파고드는 빈도 수를 줄이는 것이 곧 노련한 삶의 선수가 되는 길인지도 모른다. 평소에 우물쭈물 하다가도 시원시원한 태도로 명쾌하게 상황을 해결하는 선명함을 발휘하게 되면, 인생은 그렇게 복잡하고 어려운 것만은 아니라고 깨닫게 된다.

혹시 찢어진 종이가방을 든 사람이 다시 보인다면 얼른 다가가 말없이 헝겊가방을 주리라.

되도록이면 후회가 적은 삶을 꿈꾸며 행동 강령을 정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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