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라는 과연 고대 해상왕국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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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인수. 前 제주예총회장/시인
말도 많고 탈도 많던 ‘2012 탐라대전’이 끝났다.

반세기 역사를 쌓아온 ‘탐라문화제’의 정체성을 훼손시켜가면서까지 ‘탐라대전’으로 갈아치우려 했던 저의와, 그것이 과연 타당성이 있는 처사였는가를 되짚어 보기로 하자.

소문에는 전에 없이 요란스럽고 참신한 축제를 마련했다고 들었는데, 치르고 난후 보도들은 “반쪽짜리 축제”, “접근성의 문제”, “시가퍼레이드의 비효율성” 등을 문제점으로 지적하는 모양이다.

난데없이 전문 추진위원회가 새로 생겨나서, 도깨비방망이라도 휘두를 줄 알았는데 그만 천재지변에 묻혀버린 모양이다. 태풍이 지나는 길목인 제주의 9월에, 옥외행사를 계획하는 것이라든가, 외진 이호해변에 덕판배 임시무대를 가설하는 행위, 도두에서 이호해변까지 가두행진 코스를 잡은 것 등등은 위에 나열한 문제점들을 야기할 소지로 충분해 보인다.

어쨌거나, 제주도의 <대표문화축제>의 발전을 위해서는, 하루속히 ‘관제문화제’에서의 탈피가 새로운 과제가 되고 말았다. 관은 지원은 하되 간섭은 하지 않는다는 선진국 형 ‘팔 길이 원칙’을 지켜서, ‘민간 문화축제’로 우뚝 설 수 있도록 통 큰 결단을 내려야한다.

‘민간문화축제’를 관의 ‘들러리 행사’ 쯤으로 여겨서 떡 주무르듯이 한다면 미래는 없어 보인다. 축제의 시기, 장소, 프로그램 등을 관이 제멋대로 농단하고, 축제의 역사와 전통을 무시하여, 어느 날 갑자기 자고 일어나 봉창 두드리듯, 목민관 한 사람의 영(令) 한마디에 뒤집어지는 그런 문화제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어설프면 어설픈 대로 투박하면 투박한 대로 우리 손으로, 탐라 특유의 문화예술의 참모습을 발굴하고, 형상화하고, 계승ㆍ보존해나가는 모습으로 정착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외람되지만, ‘2012 탐라대전’은 아무리 좋게 보아도 성공한 축제로 볼 수는 없어 보인다.

‘탐라가 고대 해상왕국’이라고 행사 모티브를 설정한 자체부터가 무모했다. 특히 대표 상징행사로서 ‘탐라 환타지’를 만들었다는데, 그 워터커튼, 불기둥, 불꽃의상 등의 첨단과학기술이 활용된 야심찬 작품은, 제주를 너무 모르거나 무시한 기획이라고 보아진다.

아직 제대로 된 뮤지컬단도, 오페라단도, 민속예술단도 하나 없는 공연예술의 미개지 제주에서, 불꽃 6만발이나 쏘아 올리는 첨단과학 공연이라니 기가 찰 따름이다. 제주가 언제부터 그렇게 부자 섬이 되었으며, 첨단과학과 문화예술의 선진기지가 되었단 말인가?

아무리 국제행사인 WCC 기간이라 해도, 귀한 손님들에게 우리의 살아온 모습을 진솔하게 보여주어야 예의인데, 누구의 잘못된 고증으로 과대 포장하여, ‘탐라의 고대 해상왕국’을 뻥튀기했단 말인가? 그로 야기될 국제적인 결례는 누구의 책임인가?

그렇다면 과연, 탐라가 ‘2012 탐라대전’의 모티브가 될 만한 ‘고대 해상왕국’이었는가?

‘독자적인 문화를 갖고 있던 탐라국은 결국 고대왕국으로 발전하지 못했다. 탐라는 우선 고대국가로 성장할 만한 물적ㆍ인적 토대가 약했다. 육지에서 삼국이 고대국가로 발전하고 고대국가 생리상 영토 확장을 꾀할 때 탐라국이 찾은 독자적 생존방식은 조공외교였다.’(처음엔 백제, 백제가 망하니 신라, 신라가 망하니 고려에 조공했다. -필자 註),

‘혹자는 사료의 몇몇 사항을 근거로 탐라가 해상왕국이었다고 힘주어 말하지만 그렇지 않았다는 사료가 더 많다. 탐라가 왕국이었다고 해야 제주도가 더 위대하고 자랑스러운 것은 아니다. 그랬다면 결국 제주는 육지와 다른 나라로 독립해나가 한국의 역사와 궤를 같이하지 못했을 것이고 그 운명이 제주에게 희망적이었으리라고 장담할 수도 없다.’(여기서 탐라말기, 몽골에 의한 100년 식민지 생활이 떠올랐다. -필자 註) -유홍준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제주도편, 2012)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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