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건축과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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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철민. 제주대학교 건축학부 교수
"뉴욕, LA, 상하이, 토론토 등을 뒤덮은 현대 건축물은 너무 따분하다. 나는 그런 것들을 '건축'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느낌(feeling), 열정(passion), 사랑(love) 같은 요소가 빠져 있다."

'우리 시대의 가장 중요한 건축가'로 불리는 프랭크 게리가 9월 초 한국 방문 중 강연에서 한 말이다. 그는 스페인 빌바오의 구겐하임 미술관 등 '시대의 아이콘'이 된 건축물들을 설계하였고 1989년 건축계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프리츠커상을 받았다. 강연 중 그는 조선왕실의 사당인 종묘를 언급하며 “아름다운 여인 같다”고 극찬했지만 동시에 “서울에는 한국의 전통을 반영한 현대 건축물은 별로 없더군요”라며 아쉬워했다고 한다.

우리의 도시는 지금껏 우리의 정서가 담긴 건축물을 밀어내고 그 자리에 모던(modern)하고 세련된 건축물로 대신해왔다. 하지만 이러한 건축물은 서구양식에 기반을 두었기에 그만큼 우리의 일상에서 전통의 흔적을 찾는 것은 어려운 일이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전통성을 강조하는 것은 식상하고 진부한 것이라 취급받기도 하고 전통성과 현대성을 접목하려는 시도는 촌스럽게 치부되기도 때론 강박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프랭크 게리의 언급처럼, 우리가 가진 전통성을 바깥에서 볼 때에는 신선하고 특별한 것으로 비친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오히려 한국 고유의 특성이 사라진 한국의 현대건축이란 외국 건축가의 눈에는 서구 건축의 아류로 비치는 것이다.

외국인의 관점 때문에 전통이 중요하다는 말은 아니다. 이 땅에서 오랜 시간 살아온 사람들의 일상적 습관과 정신을 이어받은 우리에게는 우리 나름의 역사성과 전통성이 내재되어 있다. 그 때문에 우리가 떠나보낸 정든 모습의 공간과 때 묻은 재료로 구성된 정주환경은 다른 시선이 아닌 우리 자신을 위해 필요하다.

많은 사람이 알고 있는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이란 옛날의 전통을 계승함과 동시에 그 시대에 새롭게 적용하는 능력을 갖춰야 한다는 의미이다. 이는 프리츠커상의 2012년 수상자로 선정된 중국 건축가 왕슈(王澍)의 건축철학이기도 하다. 건축계의 슈퍼스타들만 받아온 이 상을 중국 변방인 우루무치 출신의 48세 건축가가 받았다는 것은 정말 놀라운 일이다.

그는 서구 건축을 흉내 내지 않고 전통에서 미래를 창조해냈으며 동시에 중국사회의 급격한 도시화 물살 속에서 옛 건물을 철거하고 유리와 대리석으로 치장한 국적불명의 건물을 짓는 것에 반대해왔다. 그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닝보(寧波) 역사박물관은 세계의 보편적인 건축양식을 바탕으로 하였지만, 중국 고(古)건물의 잔해에서 나온 벽돌을 사용하여 건축물 구석구석에서 중국의 전통과 정서를 느낄 수 있도록 하였다. 과거의 형태를 답습하기보다는 그 안에 담긴 정신을 되살려낸 것이다.

프리츠커상 심사위원회도 “왕슈는 전통과 현대의 대립을 넘어서 시간이 흘러도 변치 않는 작품을 만들었으며, 중국 도시가 직면한 논란을 뛰어넘어 지역성에 뿌리를 두면서도 세계적인 것을 보여주었다”고 수상 이유를 밝힌 바 있다. 왕슈에게 전통은 ‘창작의 원천’이었다.

왕슈의 프리츠커상 수상을 통해 그동안 한국 건축계는 어떠한 발전을 이룩했는지에 대한 자성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특히 국제적인 관광지로 도약하고 있는 제주는 독특한 건축문화의 조성이 그 어느 지역보다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제주의 아름다운 자연환경과 더불어 제주사람들이 살아가는 공간이 제주의 전통과 지역적 특성을 담고 있을 때 제주는 제주다울 수 있고 더불어 좋은 관광자원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가장 제주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라고 생각해서는 곤란하다. 건축이 지역성만 강조하면 지역적 퇴물이 되고 만다. 특별함과 보편성이 동시에 담겨있어야 오래된 시간과 역사를 느낄 수 있으면서도 새로운 미래를 창조할 수 있는 건축물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제주의 지역적 맥락에 깊은 뿌리를 두고 있으면서도 세계에 통하는 보편성을 구현하는 노력을 통해 가까운 장래에 제주의 건축계에서도 프리츠커상 수상자가 나오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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