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문단 큰 별 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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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관후. 제주4·3희생자유족회 사무국장/소설가
님은 떠났다. 우리 곁을 떠나 천국으로 훨훨 날아갔다. 아아, 님은 우리 곁을 떠났지만 우리들은 님을 생각하며, 소줏집에 모여 님을 기리며, 님이 남긴 언어들을 탐닉하고 있을 뿐이다. 제주4.3을 가슴에 안고, 그 고통을 감내하며 제주마을을 거닐었던 님이시여!

작가 오성찬이 지난 9월 26일 지병으로 별세했다. 향년 72세. 어느 언론은 제주 문학계의 큰 별이 졌다고 보도했다. 중편소설 '별을 따려는 사람들'로 신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했던 문학청년은 칠순의 초로에서 끝내 ‘별’이 되어 우리들과 결국 헤어졌다.

그 별이 어두운 밤하늘에서 반짝거릴까? 그 별이 외로운 사람들과 벗이 되어 저 아름다운 나라로 안내할까? 그 별이 아름다운 나라에서 가난한 사람들과 오순도순 살게 될까?.

필자가 오성찬을 처음 만난 것은 1968년쯤이다. 고교를 갓 졸업하고 대학문을 두드리던 시절, 그가 사는 서호리를 찾아 함께 시골길을 걷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필자는 왜 그를 만나러 저 먼 그의 고향 서호리를 찾았을까?

작가 오성찬은 바로 그해 시골 청년에서 탈출하여 제주시로 이사 할 준비를 서두르고 있었다. 당시 '현대문학'은 장편소설을 공개 모집하고, 그는 '포구'를 응모하여 최종심에서 떨어지고 얄궂게 후보작가 유감을 그 유명한 문예지에 쓰는 영광을 얻었다.

필자는 그 글을 읽으며 말을 잃고 어리둥절할 뿐이었다. 제주 문화계도 들썩였다. 제주출신의 중앙 문예지 장편공모에서 낙선 했지만 최종심까지 오르다니...온 도민의 경사였다. 당선작은 이동하의 '우울한 귀향'이고 가작은 김원일의 '축제'로 기억하고 있다.

그렇지만 한 해 걸러 오성찬은 화려하게 한국문단에 입성하였다. 1969년 신아일보 신춘문예에 중편 '별을 따려는 사람들'이 당선되어 문단에 발을 내딛고, 그해 현대문학 낙선작품 '포구'를 '제주신문'에 연재하기 시작했으며, 이어 제주신문사 기자로 입사하였다.

필자는 작가 오성찬의 대표작을 뭐니뭐니해도 '한 공산주의자를 위하여'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역사로부터 버림받은 공산주의자 조몽구(趙夢九: 1907~1973)를 주인공으로 등장시킨 작품이다. 제주4.3의 주모자로 기록되었고, 자신의 고향마을에서 1973년까지 남은 생을 살다간 인물. 그는 조몽구를 ‘한 공산주의자를 위하여’의 주인공 조명구로 부활시켜 소설 속에서 복권시켰다.

와세다대 정치학과 출신의 온건파 조몽구. 작가는 조명구로 변신한 조몽구를 당당하게 소설에서 부활시킨다. 제주4.3 초기 좌익의 핵심이었던 그는 무력혁명에 반대하다 조직 내에서 힘을 잃고 소외된다. 개성으로 끌려올라가 자아비판을 받고 다시 내려온 그는 4년여 동안 마산 부산 등지를 떠돌다 51년 체포된다. 7년 형기를 마치고 고향 성읍리로 돌아와 꿩을 키우고 사탕수수를 심으며 정착한다. 주민들은 조몽구를 ‘부모 형제를 죽인 빨갱이 두목’으로 낙인찍고 외면한다.

작가 오성찬은 지난 2008년 초 시야가 좁아지고 눈이 어두워지는 증상으로 뇌종양 진단을 받고 대수술을 받았다. 그후 5년여 동안 힘든 투병생활을 이어왔다. 그 힘든 투병 중에도 지난해 ‘제주대학교, 책읽기 릴레이’ 선포식에 참가, 거동이 불편한 몸을 이끌고 그를 위해 마련한 의자까지 마다한 채 꼿꼿이 선 채로 “제주어의 뿌리를 파서 제주어를 세계에서 가장 빛나는 언어로 정착시켜야 한다”는 강연을 펼쳐 주위를 감동시켰다.

특히 초등학교 2학년 때 제주4·3을 목격하고 ‘하얀 달빛’, ‘잃어버린 고향’ 등의 단편을 통해 제주4·3의 상처를 문학적으로 형상화하는 데도 많은 노력을 기울여왔다. 제주4.3의 언급 자체가 금기시되던 시절, 문학을 통해 가장 일찍 제주4.3의 실상과 아픔을 알리려고 노력한 용기있는 작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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