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 기본법 제14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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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승련. 아동문학가/수산초등학교장
지난 10월 9일은 566돌을 맞은 한글날이었다. 단지 한글날이어서가 아니다. 요즘 관공서를 비롯하여 우리 어린 학생들까지 말과 글을 쓰는 양태를 보면 참으로 한심스럽게 느껴진다.

한글문화연대가 지난 3월부터 3개월간 행정부 소속 14개 부처와 국회·대법원이 대외에 홍보하기 위해 만든 보도자료 2947건을 조사한 결과를 발표했는 데, 그 내용을 보면 국어 기본법 위반 투성이었다고 한다.

보도자료 1건당 평균 4.44건씩 국어 기본법을 위반했는 데, 법 위반 사례를 보면 지식경제부는 평균 13회 이상으로 가장 많고, 기획재정부는 평균 7건이 넘어 그 뒤를 이었다. 왜 법 위반이라 하는가?

국어 기본법 제14조에는 공문서의 작성에 관해 규정하고 있는데, ‘공공기관 등의 공문서는 어문 규범에 맞추어 한글로 작성하여야 한다. 다만,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경우에는 괄호 안에 한자 또는 다른 외국 글자를 쓸 수 있다’고 명시돼 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정부가 앞장서서 위법을 하고 있으니…. 게다가 쉬운 한글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기반 시설’이라 하면 될 것을 ‘인프라’라고 하고 ‘공동 연수’라는 부드러운 어감의 말이 있는데도 ‘워크숍’이라 하고 있다. 이 글을 쓰는 필자 역시 여기에서 자유롭다고 말할 수 없어 부끄럽다. 또 그 법에 따르면 특정 국가간에 배타적인 무역 특혜를 서로 부여하는 협정을 ‘자유 무역 협정’ 또는 ‘자유 무역 협정(FTA)’이라고 써야 하지만, ‘FTA’라고만 간단히 표기하는 사례가 부지기수고, 정보 기술을 ‘IT’라고만 하고 연구 개발을 ‘R&D’로 쓰고 양해 각서를 ‘MOU’로 표현하는 등 영어 약자를 일반화된 듯이 버젓이 사용하고 있다.

공공기관이 이렇게 영어 약자를 쓰면서 국어 기본법을 지키지 않는다면 일반 국민, 국가가 지정한 의무 교육까지 받아도 알지 못해서 불이익 당하는 사람에겐 어떻게 할 것인가? 그리고 국가·국민들이 이런 외국어 약자의 뜻을 알거나 모르거나 관심 밖의 일로 여긴다면 이 또한 선량한 국민을 배제하고 차별하는 일로, 알 권리를 박탈하는 것이라고 봐야 한다.

자라나는 우리 학생들의 언어 사용은 어떨까. 우리 한글과 영어 단어의 일부를 사용하여 그들 또래가 아니면 전혀 알아듣지 못하는 언어들을 만들어 사용하고 있다. ‘정신 잃다’를 정신을 뜻하는 멘탈(mental)의 앞 발음과 붕괴의 앞 글자를 따서 ‘멘붕’이라 하지 않나, 또 게임과 관련해서 소위 아이템을 얻었다는 말을 얻다를 뜻하는 한자어인 ‘득’을 따다 아이템(Item)의 끝 발음을 합쳐 ‘득템’이라고 쓰는 등 원칙도 없고 그냥 말줄이기에 편리한 글자를 조합하여 쓰고 있는 것이다.

어떤 학교에 방문차 들렀더니 마침 한글날 기념 행사로 열었던 포스터들이 전시되고 있었다. 그 중의 한 작품이 눈길을 끌었는데 세종대왕의 어진을 그려놓고 그 밑에다 ‘한 영혼이 울고 있습니다’라는 글귀가 씌어 있었다. ‘학생들도 작금의 심각한 언어 사용의 실태를 자각하고 있구나’하는 생각에 안심되기도 했지만, 막무가내로 쓰는 욕말과 더불어 한글 사용과 언어 순화 교육이 강화돼야 하겠다.

국어기본법 제2조(기본 이념)에는 ‘국가와 국민은 국어가 민족 제일의 문화 유산이며, 문화 창조의 원동력임을 깊이 인식하여 국어 발전에 적극적으로 힘씀으로써 민족 문화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국어를 잘 보전하여 후손에게 계승할 수 있도록 하여야 한다’라고 명시하고 있다.

한글의 적극적 사용에 국가가 나서야 하는 이유는 사회 전체의 의사 소통을 원활하게 하고, 우리 헌법이 보장하는 행복추구권과 평등권을 보장하며 국민의 알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것임을 깊이 인식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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