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회의 땅 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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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현. 前 제주수필문학회장 / 수필가
청명한 가을 날씨 탓인지 발걸음도 가볍다. 몸과 마음의 피로와 도시의 익명성이 초래한 메마른 감정을 달래기 위해 기분 좋게, 섬 속의 섬 ‘우도’를 향해 집을 나섰다. 관광버스는 문학 기행에 동참하는 회원들을 싣고 오전 아홉시에 출발했다. 상기된 모습과 미소 띤 표정들이 살가워 보인다. 일상의 잡다한 상념들을 뒤로하고 떠나온 홀가분한 마음 때문이 아닌가 싶다.

오늘 문학 기행을 풍요롭게 안내할 사람은 우리 회원인 이순형 박사다. 우도 출신인 그는 초등, 중등, 대학 교직의 그랜드슬램을 달성한 학자이다. 이 박사가 편집위원장을 맡아 10여 년 전에 편찬한 ‘우도지’는 700여 쪽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을 자랑할 뿐만 아니라, 향토지로서 그 학술적 가치를 높이 평가받고 있다.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작성하여 회원들에게 나눠준 ‘우도 문학기행 자료’는 심혈을 기울인 흔적이 역력했다. 이렇게 과분(?)한 안내자를 앞장세운 동료의 마음이 어찌 흐뭇하지 않겠는가.

한 시간 여 만에 당도한 성산포 여객터미널은 발 디딜 틈도 없이 인산인해였다. 몇 년 전의 모습과는 사뭇 다른 광경이다. 우도를 찾는 관광객이 성수기나 휴일에는 하루 5000명이 넘는다는 통계가 말해주듯 몰려드는 인파가 장관이다.

도항선이 천진항 선착장에 도착하자 맨 먼저 해녀동상이 시선을 끌었다. 그 옆에 강관순씨가 작사했다는 ‘해녀의 노래’가 나란히 각명 되어 있었다. 그는 1932년 항일투쟁 시 투사의 한 사람이었다. ‘우리들은 제주의 가엾은 해녀들…’로 시작되는 4절로 된 이 노래는 지금도 60대 이상 해녀들에 의해 불리고 있다고 한다.

이 박사의 감칠맛 나는 해설에 매료된 나는 ‘모범생으로, 선생님의 눈도장을 받고 싶은 착한 학생처럼 한마디라도 놓칠까 지근거리에서 따라다니느라’우도 8경도, 7대 명소를 비롯한 드라마 촬영장도 감상할 여유가 없었다. 어차피 다시 찾을 곳! 처녀림이 그러하듯 미확인 상태가 매력을 더 할 지도 모른다. 얼마 전에 언론매체를 타며 유명해진 ‘안정희 갤러리!’ 도회지에서 우도로 시집 온 여인이 운영하는 커피향이 특별하다는 카페를 찾지 못한 것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아메리칸 드림을 달성하기 위하여 미국 이민자가 넘쳐나듯 10년, 20년 후에는 우도가 ‘기회의 섬’이 되어 시집오겠다는 처녀는 물론 외국인 투자자가 몰려드는 ‘보물섬’으로 변모하지 않겠느냐는 생각이 들었다. 160년 전 이곳을 찾은 조상은 호구지책의 방편으로 농기구와 해녀잠수구를 들고 정착을 했다면 지금은 부를 창출하기 위한 기술과 자본이 유입된다는 것이 다를 것이다.

감칠맛 나는 해설로 회원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학자로서의 진면모를 유감없이 발휘하며 열과 성을 다하는 이 박사를 흐뭇한 모습으로 바라보는 원로회원이 있었다. 그가 60여 년 전 초등 교사를 양성하던 사범(고등)학생일 때 은사였던 현화진 전 교육위원회 의장이시다. 선생의 사범학교 제자 중,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상아탑에 입성하여 최고의 지성을 양성했던 유일한 제자다. 까까머리 학생이 어른이 되고 박사가 되어 큰 인물로 우뚝 선 당당한 모습을 바라보는 감회는 남달랐을 것이다.

여행은 치유의 시간이라고 했다. 호젓하고 고적한 숲속 같은 길은 아니었지만, 우도의 황량한 풍광 속에서 몇 시간의 지적 호사를 누렸다. 분화구이면서 목초지로 활용되는 널따란 평지에 이름 모를 꽃들이 단아하고 청초하다. 모든 게 지나가고 사라지는 것이 우리의 삶이다. 결국, 남는 것은 추억뿐이다. 오늘을 따뜻한 기억으로 간직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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