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름 걷기 낙수(落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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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상호. 前 중등교장 / 시인

“어떻게 지내십니까?”

퇴임 후 일상에 대하여, 필자에게 물어오는 인사말이다. 객관식 문제 선택지를 급히 내 놓아야 할 때처럼 멈칫거리다 나오는 말, ‘건강관리입니다.’ 이 대답에, 고개를 끄덕거리며, 밝은 표정까지 짓는다. 마치 그게 정답이라는 듯이.

퇴임 전 복무에 해당하는 시간을 어떤 연유로 오름 걷기가 새롭게 차지하고 있다. 걷는 데엔 어떤 방식이나, 무슨 게임전술 따위가 필요한 것도 아니다. 그냥 걷기만 해도 충분하다.

두발을 젓가락 짝처럼 움직이면서도, 꽃꽂이 전문가는 억새꽃을 한두 송이 꺾어오고 싶을 것이다. 풍광(風光)을 카메라에 담아오고 싶은 이도 있을 것이고, 그림스케치를 해야 만족할 이도 있을 것이다. 시인은 독자와 공유하고 싶어서 글로 옮기려 할 것이다. 그것들을 이삭 줍듯이 모아, 졸시(拙詩)로 내어본다.

 

오름 오르기


오름을 오를 땐/차오르는 숨 고르며 디딜 땐/음메~!/어디선가 들려올 듯/어릴 적 찾아 나섰던/길 잃은 그 송아지 소리//나이는 예순 너머 내리 내딛는데/오름은 예나 그 모습 변함이 없고/발밑 어디선가 그 송아지 보일 듯하나/눈길 안에 드는 수평선 잘라 먹은 능선뿐//야호~!//평생을 밟으며 올라/목쉬게 불러도 오늘도/오름은 오름으로만 예 남아있고,/다를 바 없이 내 맘 속엔 오직/엄마 닮았던 그 송아지 메아리/음메~

오름은 삶의 실제로서는 목장이었고, 길 잃은 소를 찾아 올라가는 전망대가 아니었는가. 소년 시절에 한두 번 누구나 겪어봤을 것이다.

사려니 숲길을 걸었다. 필자는 평생 첫길인데, 걷는 이가 무척 많았다. 이삭을 한 점 주웠다.


사려니 숲길


길을 간다/숲길을 걷는다//송이흙은 보소뽀송/발바닥 간질이려 들고/성큼성큼 나무들도/맞으려 팔 벌려 걸어오고/바람도 결 이어 선들선들/내 이마 어르러 감아든다/

잎 새 마다 반짝 일며/햇살도 덩달아 윙크한다//사려니, 사려니......사려 하는 이/아! 사려(思慮)하는 이/송이흙, 나무, 바람 그리고 햇살/넷이서 밭가는 마음(心)씀으로(思)/걷는 세상을 헤아림(慮)이랄까//넷이서 주는 배려 속으로/사려(思慮)하는 이, 사려니, 사려니/그 숲길을 걷는다/길을 간다

붉은오름 꼭대기는 한라산과 성산일출봉을 이은 선분 위에 있었다.


붉은오름에서


오름 정수리에 올라서니/한라산은 임석 사령관이다//뒤로 돌아 미간(眉間) 새에/성산 일출봉을 향도로 두고//좌우로 나란히!/한 소리 내어보는 구령에/북제주 남제주 구분 없이/일렬횡대로 곧바로 모였다/오름들 차렷 자세로 줄지었다//주먹 쥐고 팔 길게 뻗었더니/양 주먹 등 엄지에서 소지까지/오름들 그 집합, 부대편제 갖췄다/명령 기다리는 듯 올려보고 있다//받들어 평화!/오름들 사열을 받고 있다/한라산이 짓는 미소 아래/사람들 들숨날숨 걷고 있다

어떤 환자가 명의(名醫)를 찾아갔다. 그의 처방은 ‘어느 산 능선 아래에 약수터가 있으니, 매일 걸어가서 마시라’는 것이었다. 이 처방의 핵심은 약수에 있는 게 아니다. 약수터를 사들여 그 옆에 집을 짓고 마셔도 아니 되며, 말(斗)들이 그릇에 떠와 집에 두면서 마셔도 된다는 것이 아니다. 매일, 그곳까지 걸어가야 한다는 것이었다.

제주도(島)는 한라산과 오름들의 섬이다. 백록담처럼, 모든 오름 위에도 물이 있다. 약수를 마실 수 있다. 어떤 약수가 그곳에 있을까. 집에서 지고 걸어 올라가라. 그곳에서 마셔보라. 그게 약수 아니겠는가.

꽃꽂이, 카메라, 그림 등 어디에도 전문가가 아니면 어떠랴만, 시인이 아닌 사람은 없다. 오름 위에 서면, 가장 아름다운 시구(詩句)를 누구나 터뜨린다.

“햐!!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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